8월이 오면 우리 대한민국의 시련과 극복, 그리고 광복의 감격과 건국으로 이어지는 역사를 돌이켜 보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역사에 대한 소혜 속에 국권회복을 위하여 헌신하신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의 숭고한 뜻을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겨 보곤 한다.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여건 속에 다가오는 제63주년 광복절은 그 의미가 특별할 듯하다. 매년 정부주관으로 광복절 경축식을 비롯해 다양한 경축행사를 실시하고 있지만 올해 만큼은 연례적인 행사에 그치지 않고 진정한 광복의 참 뜻을 전하고 모든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날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하고 효과적인 행사를 개최하고, 대외적으로는 일본이 독도가 자기 땅이라고 왜곡 주장하는 등의 망언을 부르짖을 수 없도록 광복의 역사적인 의미, 민족적인 가치를 되새기고 그 정기를 이어받아 제2광복의 정신 무장으로 심기일전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광복절은 1945년 8월 15일 일제로부터 해방된 의미 있는 경축의 날임과 동시에 1948년 7월 12일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근거로 1948년 8월 15일에 국가권력을 삼권(입법, 사법, 행정)으로 분립한 이승만을 초대대통령으로 하는 대한민국정부를 수립한 날이기도 하다.
1875년 운요호사건(雲揚號事件)을 계기로 일본국의 간섭을 받아오던 조선은 1910년 8월 22일 친일파인 총리대신 이완용과 일본국 데리우치 마사타케 사이에 합병조약을 강제로 체결했다. 이어 1910년 8월 29일 순종에게 조칙(詔勅)을 강요함으로써 우리민족은 대한제국으로써 정치, 경제, 외교 등 모든 것을 잃게 된 경술국치(庚戌國恥)를 당했다. 이로 인해 백성들은 35년간 강제노동과 강제징용에 시달리고, 고유의 역사와 언어, 문자까지도 사용을 금지 당하는 등 굴욕적이고 비참하게 생활하였다.
그러나 온갖 탄압 속에서도 우리민족은 조국광복을 위해 국내외에서 독립운동을 맹렬히 전개하였으며, 중국에서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고 광복군을 조직해 항일 투쟁을 계속하였다. 나라를 되찾겠다는 신념 하나로 투쟁하였고, 그리하여 해방을 맞았으며, 오늘의 대한민국과 대한국인이 있게 하였다.
국가보훈처에서는 매년 이달의 독립운동가를 발굴 선정해 그 분들의 업적을 알리고 발전의 계기로 삼고자 학술 강연회 등을 개최하는 등 다양한 홍보활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그 의미가 특별한 8월의 독립운동가를 소개하고자 한다.
광복군 양성에 일생을 바친 임시정부 요인 유동열(柳東說)은 평북 박천군에서 유종식(柳宗植)과 모친 최씨 사이에서 출생하였다. 유동열은 일본의 성성학교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대한제국 육군 참령, 105인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고 만주로 망명하였다. 1919년 이후 임시정부의 군사 분야 요직에서 활약하였으며, 임시정부 군무총장·국무위원 등을 역임했다. 1950년 10월 18일 평안북도 회천의 어느 농가에서 숨을 거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9년 대한민국 정부는 공훈을 인정하여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우리 후손들은 유동열 독립운동가처럼 애국애족정신을 깊이 느껴보고, 조국을 위해 신명을 바친 수 많은 선열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가슴에 새겨 대한민국과 그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 우리가 만들어가는 유산인 보훈문화의 소중함을 생각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광복절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또한 광복절을 단순히 공휴일이라 생각하지 말고, 회갑을 보낸 제63주년 광복절을 맞이해 애국선열들의 헌신을 되새겨 보고 국민모두가 60여 년 전에 우리의 나라를 세운다는 마음과 잃었던 나라를 영구히 지킨다는 ‘초심’으로 정신을 가다듬고 힘을 합친다면 민족번영과 세계평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김재신 <수원보훈지청 보훈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