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들의 불행이 연이어 터지다가, 최근에는 전직 고위공무원과 증권사 직원의 자살까지, 우리 사회는 계속되는 개인의 비극으로 암울한 분위기에 쌓여 있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로부터 기인한 공황에 가까운 경제적 어려움이 사실상의 발단이 된 듯도 하지만, 다만 이와 같은 사회경제적 곤경만이 최근 연이은 자살의 직접적인 이유인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비교적 꽤 오래 전부터 OECD 국가 중 자살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로서 정상을 차지하였던 사실만 보더라도, 최근의 추세를 다만 경제적 어려움이 극심해져서 발생하는 사건들로만 한정시키기 힘들다. 가장 최근의 객관적 지표는 한국인의 자살률이 2007년 10만명 당 24.8명으로 전년보다 13%나 증가했으며, 이는 OECD 평균인 11.2명보다 무려 두 배가 많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왜 우리 국민은 자신들의 문제를 자살이라는 극단적 방법을 통하여 해결하려고 할까? 자살의 원인에 대하여서는 크게 두 가지 설명기제가 존재할 수 있다. 우선 거시적 관점으로, 한 국가 내에서 발생하는 자살 사건을 사회학적인 입장에서 설명하는 뒤르껭(Durkheim)의 이론을 들 수 있다. 19세기 말 사회학자 뒤르껭은 자살현상을 하나의 사회병리로 보았다.
그는 자살현상의 연구대상을 개인이 아니라 사회로 규정하고, 자살이 개인적 행위로 보이지만 실은 사회의 특정한 상태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살률에 대한 통계분석을 통해 특정한 형태의 사회변동은 자살률을 증가시키기도 하고 감소시키기도 한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자살은 기본적으로 사회가 점점 다분화되고, 그로 인해 개인주의는 팽배해지며, 아울러 사회의 도덕적 규제가 약화됨으로써 즉, 사회 통합이 약화됨으로써 증가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사회 통합이 강할수록 자살이 적어진다는 뜻은 아니다.
사회 통합이 약하고 개인주의가 팽배해지면 가장 일반적인 자살 형태인 이기적 자살이 많이 일어나고, 사회 통합이 강하여 집단의 규범이 개인에게 강하게 작용하면 집단의 압력이나 규범에 의한 이타적 자살이 많이 일어날 수 있다고 한다.
그의 이론에 따르자면, 현재 우리나라에서 발생하고 있는 자살의 추세는 극히 이기적인 형태의 자살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에 비해 자살에 대한 개인적 원인론은 자살의 원인이 정신질환에 있음을 지적한다. 최근 국내에서 발생한 자살 중 80%가 우울증이 그 원인인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경우 우울증 환자의 20~30% 정도만이 치료를 받을 정도로 우울증을 방치해 둔다는 것인데, 바로 이런 이유로 해서 우울증이 결국 자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정신과 질환에 대한 오래된 편견이 가시지 않아 발생하는 매우 전근대적 사회현상과 맞물려 있다.
예컨대 우울증을 앓는 환자들은 어느 정도 자신의 병을 인식하지만, 정신과에 와서 직접 치료를 받는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고, 치료는 약물치료만 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거나, 정신과 약은 중독된다는 오해도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다.
더욱이 우리나라에 광범위하게 팽배한 음주문화는 우울증에 의한 자살을 부추긴다.
2005년 의학 잡지 ‘법의학’에 발표된 슬로베니아의 자살 통계에 의하면 술을 마시고 자살을 감행한 사람이 약 75%에 이른다고 한다. 이처럼 자살과 술은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과도하게 허용적인 우리의 음주문화는 최근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자살에 촉매작용을 하고 있다.
이처럼 자살의 무방비지대인 우리의 상황에서 그나마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예방책은 바로 우울증을 줄이는 방법이다. 앞서도 언급하였다시피 정신질환에 극도의 거부감을 가지는 많은 공인들에게 한 가지 권고할 수 있는 대안이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생각을 바꾸는 방법이다.
정신의학에서도 인지치료는 우울증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서, 여러 각도에서 그 효과성이 입증되었다. 인지치료의 핵심은 바로 세상을 보는 관점을 바꾸는 것이며, 치료자는 이를 연습시키고 통찰을 주는 역할을 한다.
바로 이와 같은 이유로 에밀 쿠레의 저서인 ‘자기암시’는 나름의 의미를 제공한다. 자기암시란 바로 자신에게 암시를 걸어 세계관을 바꿀 수 있으며, 이는 결국 스스로를 동기화하는 힘이 된다는 것이다.
그는 자기암시의 구체적인 방법으로서 ‘나는 날마다 모든 면에서 점차 더 좋아지고 있다.’라는 말을 스무 번씩 되뇌일 것을 권고한다.
단순히 이처럼 자신을 의식적으로 동기화시키는 일만으로도 이 가을 낙심한 민생들의 우울한 마음에 빛이 들 수 있다면, 그나마 술보다는 양서 한 권이 영혼을 구제해 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