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가 한창인 들녘은 쓸쓸하다 못해 황량하다. 그도 그럴것이 들녘을 빼곡 메웠던 황금빛 벼는 자취를 감추고 오직 남아 있는 것이라곤 허수아비 뿐이니 공허할 수밖에 없다. 허수아비의 어원은 분명치 않다. 19세기 문헌에 ‘허슈아비’로 표기되고 있는데 아비는 본래 아버지를 뜻하는 말이지만 ‘허슈’는 무슨 뜻인지 헤아리기 어렵다. 짐작하건대 ‘허슈’의 허는 한자어의 ‘虛(허)’가 아닌가 싶으나 단언할 수는 없다. ‘허슈’는 “잘 짜이지 않아 든든하지 못하다.”는 의미의 ‘허수하다’의 ‘허수’일 가능성이 크다. 허수아비는 넓은 의미에서 우상을 뜻하고, 그 형상은 사람을 닮았다. 예컨대 동구 밖에 세우는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제주도의 토속 우상인 ‘돌하루방’, ‘토우(土偶), 토용(土俑), 무덤을 지키는 돌신상(石人)’ 따위가 이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허수아비는 좋은 일에만 쓰여지지는 않았다. 원수를 갚기 위해, 또는 원한을 풀기 위해 저주하는 수단으로 쓰이기도 했다. 어쨌거나 허수아비의 진면목은 이미 앞에서 말하였듯이 곡식을 지키는 데서 찾을 수밖에 없다. 농사 짓는 농부로서는 허수아비가 날짐승을 쫓는 효과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세웠고, 허수아비는 그런 농부의 바람을 어느 정도 충족시켜 주었으니까 둘 사이는 신뢰의 관계이면서 상호보완적인 관계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전설이 있다. 계모의 학대를 견딜 수 없었던 허수는 집을 뛰쳐나가 머슴살이를 했다. 허수를 찾아 나섰던 아버지는 어느 논둑에서 쓰러져 죽었다. 바로 허수가 새를 망보던 곳이었다. 그 뒤 허수의 아비가 죽은 자리에는 새들이 날아들지 않았다. 이후로 민간에서는 사람의 형상을 만들어 허수의 아비처럼 허름한 옷을 입혀 논둑에 세워 새를 쫓게 되었고, 그 이름을 허수아비라 불렀다는 것이다. 줏대없이 남이 시키는대로 행동하는 사람을 허수아비 같다고 말한다. 강대국의 조종을 받아 움직이는 정권을 괴뢰정권이라고 했다. 우리 사회와 지구상에는 괴뢰정권도 있고, 허수아비 같은 인간도 얼마든지 있다. 들녘에 혼자 서 있는 허수아비를 보면서 자신을 되돌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