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28 (토)

  • 맑음동두천 1.3℃
  • 맑음강릉 5.1℃
  • 맑음서울 4.7℃
  • 맑음대전 4.3℃
  • 맑음대구 4.3℃
  • 흐림울산 5.7℃
  • 맑음광주 6.1℃
  • 맑음부산 8.2℃
  • 맑음고창 2.1℃
  • 구름많음제주 11.5℃
  • 맑음강화 3.6℃
  • 맑음보은 0.7℃
  • 흐림금산 0.2℃
  • 구름많음강진군 3.9℃
  • 흐림경주시 3.0℃
  • 맑음거제 8.0℃
기상청 제공

[창룡문] 민란

신금자(수필가)

정약용이 지은 ‘목민심서’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1803년 강진에 사는 백성이 아이를 낳은 지 사흘 만에 군보(軍保)에 편입되고 이정이 못 받친 군포 대신 소를 빼앗아 가니 그 백성이 칼을 뽑아 자기 양경을 스스로 베면서 말하기를 “내가 이 물건 때문에 곤액을 받는다.”고 하였다.

그 아내가 양경을 가지고 관문에 나아가니 피가 아직 뚝뚝 떨어졌다.’

군포의 부당한 징수에 저항하는 한 백성의 이야기이다. 조선후기에는 세도정치 아래 삼정의 문란이 극심하여 민중생활이 극도로 어려워졌는데 이로 인한 지배층에 대한 불만은 극에 달하고 향촌을 떠나 산으로 들어가 화전을 일구어 살아가거나 유리걸식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 때문에 지배 체제에 항거하는 농민 봉기가 자주 일어났다. 1862년 진주 민란을 시작으로 18811년 ‘홍경래의 난’에 이어 전국적 농민 봉기가 전개되었다. 그야말로 조선후기는 ‘민란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결국 민란은 피지배층이 살아가기 힘든 억압된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었다. 그러다 현재처럼 사회가 다원화되고 자신의 의사표시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민주주의 국가가 뿌리를 내리며 점차 사라졌다. 얼마든지 자신의 의사를 밝힐 수 있으며 투표권을 가지고 있어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결과로 나타나기 때문에 극한적인 투쟁으로 번질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최근 중국에서 글로벌 경기침체의 여파로 민생관련 집단시위와 민원이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이들의 시위와 민란의 유사점은 “먹고 살기 힘들다”는 생계형 시위에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경제상황도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국민소득 2만 불 시대, 세계가 금융위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보다 서해건너 중국에서 날아온 뉴스는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닌 곧 우리의 겨울이 될 듯도 하여 심히 걱정되고 춥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