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28 (토)

  • 맑음동두천 -1.5℃
  • 맑음강릉 2.4℃
  • 맑음서울 2.4℃
  • 맑음대전 1.4℃
  • 맑음대구 2.1℃
  • 구름많음울산 4.6℃
  • 박무광주 3.8℃
  • 맑음부산 6.1℃
  • 맑음고창 -1.4℃
  • 구름많음제주 10.6℃
  • 맑음강화 1.1℃
  • 맑음보은 -2.0℃
  • 맑음금산 -0.1℃
  • 맑음강진군 2.8℃
  • 흐림경주시 0.8℃
  • 맑음거제 5.7℃
기상청 제공

[아침단상] 질그릇 같은 분

김수환 추기경 건강악화 착잡
곁에 오래오래 계셔주길…

 

힘든 시대에는 그 시대에 맞는 어른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김수환 추기경이 그런 분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 어른은 요즘 건강이 무척 심각하신 모양이다.

1922년생이니 올해 우리 나이로 87세다.

그 분의 말 한마디에 현재 고통을 받는 사람들은 희망을 얻고,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것 그 자체 하나만으로도 든든하게 느껴진다.

전 직장(방송국)에 근무할 때 이십년전의 사연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가 잠시 회상에 빠져 본다.

방송쟁이(?)들은 누구나 그러하듯이 일단 유명한 분이 떴다 하면 자기 프로그램에 출연시키고 싶은 충동을 받는다.

추기경님을 섭외하려고 안동 교구에 갔더니 부속실에 지역 국회의원과 도지사는 물론 별을 단 장군까지 하여간 찌르르한 분들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었다.

체류시간은 대략 네시간 정도란다. 그리고 추기경께서 언론매체에 노출되는 걸 싫어하신다고 하는데 짬을 내서 지역 방송에 출연하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포기할까?

순간 특이한 오기가 발동했다.(긴장도 되고...)

마침내 순서가 돼서 들어 갔더니 그때만 해도 할아버지가 아닌 참으로 인자한 삼촌 같은 분이 앉아 계셨다. 아주 정성을 다해 그리고 절도있게 인사를 드렸다.

“안동교구가 처음 신부로 서품받으신 곳인데 신도들이 근황을 굉장히 궁금해 합니다.일일이 소식도 전하지 못할테니 방송으로 나마...”

그럴 듯하게 포장을 했다.

몇분짜리 프로그램인지 물으시길래 실제는 50분인데 20분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설마하니 방송도중에 일어설 것 같지는 않을 것 이라는 생각이었다.

다짜고짜 “출연료는 얼마요?” 당황해서 “많이 준비했습니다.”하고 얼버무렸다.

“나 돈 많이 필요합니다.그래서 가끔 재벌집 주례도 합니다.”

추기경님이 돈이 뭐 필요하시겠나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아마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다는 것을 금방 알아챘다.

그때 그 어른 표정이 얼마나 순진(?)하든지 “돈 많이 준다니 돈 벌러 방송국에 다녀오리다.”

주위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일어서자 면담순서가 나보다 뒤에 계신 분들이 얼마나 인상을 쓰던지 뒤통수가 근지러울 정도였다.

추기경께서 서울에서 타고 온 차가 브리사였다.

당시 기아자동차에서 나온 소형차인데 먼지가 뿌옇게 쌓였던 소형차를 보고 놀랐다.

“예전에 저기 보신탕 참 잘하는 집이 있었지...”

방명록에 기념 될 만한 글을 말씀 드렸더니 ‘又日新(우일신)’이라고 붓으로 또박또박 쓰셨다.

매일 새롭게 태어나란 말씀이다.

그 때 오고갔던 대화를 한번 정리해 봤다.

-즐겨 부르시는 노래는.

거 뭐 있잖아,얼어붙은 달그림자 호숫가에 지고...

아마 방송에서 ‘노래를 부른 추기경은 전무후무(前無後無)한 일’이라고 한다.

추기경이 된 뒤 바티칸 소유의 벤츠를 타고 한껏 폼(?)을 냈는데 나중에 공짜가 아니고 일반택시 요금의 배라서 앗뜨거워라 싶어 택시를 탔단다.

신학교에 입학해서 일본유학,사제서품,주교인명 등 신상에 커다란 변화가 있을 때마다 결국은 그 변화를 받아들이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도망갈 방법은 없을까 하는 궁리를 떨쳐 버리지 못했단다.

신부(神父) 말고 다른 것을 해 보고 싶은 게 결혼해서 처자식과 오순도순 살아 봤으면...

참으로 인자(仁慈)하셨다.

녹화(錄畵)가 끝난 뒤 “이리로 모이시요,추기경하고 사진찍는 것이 얼마나 영광인 줄 모르는구만...”

나도 그때 그 분과 둘이서 찍은 사진을 서재에 걸어 두고 있는데 천주교 신도되는 분들이 그 사진을 보고 나면 나를 대하는 태도가 아주 달라졌다.

사주팔자에 인중이 긴 분들은 장수하신다고 했는데...

건강을 빨리 되찾아 우리들 곁에 오래오래 계셔주길 희망해 본다.

김수환 추기경의 호는 ‘옹기’라고 한다. 옹기 장사를 했던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질그릇 같은 소박한 삶의 목표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