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27 (금)

  • 맑음동두천 7.9℃
  • 흐림강릉 6.0℃
  • 맑음서울 11.3℃
  • 맑음대전 8.6℃
  • 맑음대구 8.3℃
  • 흐림울산 7.7℃
  • 맑음광주 9.4℃
  • 흐림부산 8.5℃
  • 맑음고창 8.2℃
  • 구름많음제주 10.2℃
  • 맑음강화 9.4℃
  • 맑음보은 6.3℃
  • 맑음금산 8.8℃
  • 구름많음강진군 9.5℃
  • 흐림경주시 7.6℃
  • 흐림거제 9.7℃
기상청 제공

[창룡문] 서동요

신금자 수필가

서동요는 신라 26대 진평왕 때 백제 30대 임금인 무왕이 지었다는 4구체로 된 국문학사상 최초의 향가이다. 이 노래는 향가 중 유일한 동요로 ≪삼국유사≫ 기이(紀異) 제2 무왕(武王)조에 수록되어 있는 서동설화(薯童說話)에 끼어 전해지는데 이 설화에 의하면 이 노래는 백제 무왕이 소년시절에 서동으로서 신라 서울에 들어가 진평왕의 셋째 딸인 선화공주를 얻으려고 지어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 서동설화에 따르면 서동은 익산 지역에서 어머니와 단 둘이 마를 캐며 생계를 유지해 나가는 삶을 살았었는데 ≪삼국사기≫에는 서동에 대해 법왕의 아들로 위풍이 뛰어나고 지기가 호걸했다고 적혀 있다. 사실 왕자신분인 그가 왜 마를 캐어 어렵게 생계를 꾸려가야 했는지 서동의 실체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삼국 통일을 놓고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던 백제의 왕과 신라의 왕이 사돈관계를 맺는게 과연 가능할까라는 의문이다.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서동왕자와 선화공주의 러브스토리는 지금껏 국경을 뛰어넘은 사랑으로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있다. 이 러브스토리의 하이라이트는 익산 미륵사의 창건으로 이어진다. 미륵사는 서동왕자가 선화공주를 위해 용화산(龍華山) 아래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삼국유사가 기록을 통해 전하는 내용이지만 미륵사의 정확한 창건시기와 목적 등은 언급돼 있지 않다.

설상가상으로 이러한 서동설화 자체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커졌다고 한다. 최근 국립문화재연구소는 미륵사지 석탑내 ‘금제사리 보안기’를 공개했는데 미륵사지 석탑에서 발견된 문서에 대한 판독 결과 미륵사를 창건한 백제왕후는 선화공주가 아니라 백제 좌평 사택적덕(沙宅積德)의 딸인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란다.물론 그 정확한 해석은 좀 더 시간이 걸릴 것이라지만 국경을 뛰어넘은 두 젊은 청춘남녀의 러브스토리는 영영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르겠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