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와 보수를 규정하는 아주 쉽고 일반적인 해석은 ‘도덕성’이다. 이념이나 정책에 상관없이 모든 조직이나 단체의 존립가치 중 첫째로 꼽히는 것이 바로 도덕성이기 때문이다. 춥고 배고파도 이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의 원천 역시 높은 도덕성으로부터 출발한다.
이러한 상징의 대표적인 단체가 바로 민주노총이었고 모든 국민들은 그렇게 믿어왔다. 한 개인의 실수로 보아줄 수 없는 것도 이 같은 민노총의 상징성을 굳게 믿어왔기 때문이다.
민노총의 간부가 산하여성조합원에게 성폭행을 시도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지탄을 받아 마땅하지만 그 사실을 은폐하려했다는 정황을 보고 아연실색할 뿐이다.
보수정치권에서 이 같은 일이 벌어졌다면 어떻게 됐을까, 지금쯤 거리로 뛰쳐나왔을 것이고 붉은 머리띠에 수많은 피겟들이 거리에 흘러넘칠 것이었다. 민노총은 생산의 주역이다. 민노총의 존립기반은 사회개혁과 역사발전의 원동력인 노동자의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이념에서부터 출발한 것이다.
그동안 간헐적으로 들려왔던 노동귀족이라는 불명예스런 호칭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민노총의 건강한 노동운동을 기대해왔다.
우리가 이번 사건을 더 무겁고 진지하게 인식하는 이유는 이 같은 민주노총을 깊이 신뢰해왔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그렇게 신중하게 경계해왔던 조직중심, 남성우월주의가 민노총에도 여전했기에 이 같은 파렴치한 행위가 나타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노동조건에는 남, 여 구분이 없는 평등조건이 선행되어야 한다. 전체 조직에 남길 피해가 무서워서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일이 민노총에서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더욱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조직을 위해서는 개인의 권익이나 억울함을 감수해야 한다는 식의 대응방식으로는 더 이상 국민적 공간을 얻을 수가 없다.
대표적 진보단체의 핵심부에서 이런 파렴치한 행위가 발생했고 그 위의 지도층에서는 은폐하기에 급급하고 있다는 것은 노동계의 문제만이 아니다. 진보적 시민단체에 대한 정부여당의 압박이 가중되고 있는 중에 민노총의 이번 사건으로 여타 단체들은 제 목소리조차 낼 수 없는 지경에 까지 이르고 있다.
이번 기회에 가부장적이고 권력화 되가는 민노총의 전면적인 수술을 요구한다. 사건의 발생경위와 처리과정 등을 주의 깊게 지켜보면서 어떻게 수습이 될 것인지에 대한 깊은 우려를 감출 수 없다. 오직 혹독한 자기반성과 엄격한 내부정비를 통해서 잃어버린 도덕성을 확립하는 길만이 유일한 사죄의 길임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