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널리 시행되는 경마는 인간이 말을 가축화한 시기부터 시작된 태고의 스포츠다. 역사상 최초로 문헌에 나타난 경마는 호머의 ‘일리아드’에 서술된 전차경마다.
‘일리아드’ 23장에 나오는 이 인류 최초의 경마는 트로이가 함락된 뒤 그리스 전쟁 영웅 아킬레우스가 전사한 파트로클로스의 영혼을 기리기 위해 개최한 것으로 되어 있다.
3200년 전 열렸던 흥미진진한 ‘아킬레우스 배 특별경주’는 어떤 형식으로 치러졌을까. 아킬레우스의 인척이자 절친한 친구 파트로클로스는 트로이의 용장 헥토르의 일격을 받아 죽고 만다.
그리스 연합군 총사령관 아가멤논과 반목하고 싸우기를 거부했던 아킬레우스는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에 분노해 다시 전쟁터로 돌아오고, 헥토르를 죽여 복수하고 난 뒤 파트로클로스의 추모 경기를 연다. 추모 경기는 권투, 레슬링, 원반던지기 등 다양한 종목이 개최되었는데, 그 중 전차경주도 열렸다.
‘아킬레우스 배 특별경주’에는 다섯 명의 기수가 출전했는데, 말 타기의 명수 유메로스, 아르고스의 왕 디오메데스, 트로이 전쟁을 일으킨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 제우스신에게 기승기법을 배운 안테로스, 크레타인 총대장의 조카 메리오네스가 그들이다.
발주 위치는 투구 속에 구슬을 넣어 추첨한 결과 1번 안테로스, 2번 유메로스, 3번 메넬라오스, 4번 메리오네스, 5번 디오메데스였다. 당시 전차경주는 두 마리 말이 수레를 끄는 방식으로 초원에서 벌어진 즉석 경주인 관계로 기복이 심한 난코스였다.
사료에 따르면 경주거리는 무려 12㎞였고 경주기록은 25~30분에 달했다. 출주한 모든 기수에겐 상품이 고루 돌아가 1등은 대형 솥, 2은 망아지 딸린 암말, 3등은 신형 가마솥, 4등은 막대기, 5등은 술잔이었다. 당시의 자세한 경주전개 과정은 알 길이 없으나, 신(神)들이 나타나 공정한 경마시행을 방해했다는 기록이 있다.
유메로스를 후원하는 아폴로신은 디오메데스의 손에서 채찍을 떨어뜨리게 하는 치사한 방해전술을 폈으나, 아테네 여신이 나타나 채찍을 주워주었다. 아폴로신의 경주방해에 화가 난 아테네 여신은 유메로스의 마차를 때려 부숴 기수를 낙마하게 만들었다.
나머지 전차들이 치열한 접전을 벌인 끝에 디오메데스가 우승을 차지하고, 안테로스가 간발의 차이로 2착을 차지했다.
그러나 경주결과에 불만을 품은 메넬라오스는 재결위원인 아킬레우스에게 강력하게 항의했다.
2착을 차지한 안테로스가 자신의 경주 중 자신의 진로를 방해했다는 것이다. 심의경주에 지정된 아킬레우스 배 특별경주는 결국 안테로스가 3착으로 내려앉고 메넬라오스가 2등상인 암말을 차지하게 됐다. 아킬레우스는 유력한 우승후보였던 유메로스가 낙마한 것을 불쌍하게 여겨 자신의 갑옷을 감투상으로 주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