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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에도 경마는 열렸다

北 선전포고 알았지만 12경주까지 마쳐
조교사·기수들 징집…경마 공백기 시작

한국전쟁의 발발 당일인 1950년 6월25일에도 경마는 시행되었을까. 많은 경마팬들이 궁금해 하는 사항 중 하나다.

이날 신설동 경마장은 평상시와 다름없이 일요경마를 시행했다. 특히 이 날 신익희 국회의장 상전(賞典)경주로 많은 입장객이 몰려들었다. 첫 경주는 11시에 시작됐고, 경마팬들은 말들의 질주에 환호했다.

불안한 조짐은 4경주가 시작될 무렵이었다. 정체불명의 프로펠러 비행기 한 대가 경마장 상공에 나타나 전단을 살포하고 사라졌고 전단을 읽은 사람들은 그제야 북한군의 정찰기가 대남선전 포고를 알았다.

잠시 술렁이던 경마장은 경마를 계속했고 제7경주 신익희 국회의장 상전경주도 무사히 치렀다. 오후 5시쯤 경마장에도 북한군의 남침사실이 알려졌으나 그 와중에도 마지막 12경주까지 모두 마쳤다.

경마가 끝날 무렵 조교사와 기수들은 대한청년단 본부에 집합하라는 지시를 받았고 청년단원이던 그들은 그 길로 국민방위군으로 징집돼 전쟁터로 떠났다. 사무실에 늦게 도착한 사람들은 징집을 면해 피난길에 올랐다.

1928년 9월20일 조선경마구락부의 경성경마장으로 개장식을 가진 이래 22년간 경마를 시행했던 신설동 경마장은 이날 이후 막을 내렸다.

남침한 북한 인민군은 신설동 경마장에 탱크와 차량 등 군 장비를 은닉해 미 공군의 집중 폭격을 받아 크게 부서졌다. 경주마 200여두도 인민군에게 끌려가 군수물자를 수송하다 한미 연합군의 포탄 세례를 받고 대부분 죽고 말았다.

서울을 수복한 마사회 임직원들은 폐허로 변한 신설동 경마장 복구를 위해 노력했으나 1.4 후퇴를 맞아 또 다시 피난길에 올랐고 이로 인해 경마는 긴 공백기에 접어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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