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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6.25전쟁 59돌과 한반도 평화

오늘로서 6.25전쟁 쉰아홉돌을 맞았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인민군(북한군)은 옹진반도, 개성, 의정부, 춘천, 강릉 등 5개 방면을 통해 남한에 대한 기습 공격을 감행했다. 전쟁을 예상 못했던 남한 국민과 군부는 허둥댈 수밖에 없었고, 파죽지세로 남침한 인민군은 개전 3일 만인 6월 28일 서울을 함락했다. 이날 오전 11시 30분 김일성은 평양방송을 통해 ‘공화국 수도 서울 해방’을 공식 선언했었다.

서울이 함락될 때까지 3일 동안의 한국군 피해는 약 4만4000명에 달했으나 북한군의 피해는 전사자 219명을 포함해 1012명밖에 되지 않았다. 6.25전쟁은 처음부터 공정하지 못했고, 명분도 없었다. 민족사상(史上) 처음 있었던 골육상잔의 전쟁은 우여곡절 끝에 개전 3년만인 1953년 7월 27일 한국 대표가 불참한 가운데 미·북이 휴전협정에 조인함으로써 전쟁은 끝났다. 그러나 유엔측은 제1차 대전 전비에 버금하는 150억 달러를 쏟아부었고, 한국을 포함한 유엔군측 총사상자는 33만여 명, 공산측은 5배에 달하는 180만여 명에 달했다.

이밖에 60만 채의 가옥과 건물이 파괴되고 20만 명의 전쟁 미망인, 10만 명의 전쟁고아, 공업시설의 45%가 망가졌으며 1000만 이산가족이 생겼다. 소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남한해방’을 명분으로 감행한 남침전쟁은 이 땅을 초토화하고 무수한 생명을 살상한데 그치지 않고 민족 자산을 잿더미로 만든 것 외에 얻은 것이란 영원히 씻지 못할 증오와 한의 상처 뿐이었다.

휴전 이후 오늘날까지 36년 동안의 양측 관계는 어떤가. 김대중정권이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 노무현정권이 2007년 ‘10.4남북공동선언’을 통해 북한 퍼주기를 했지만 북한이 우리에게 돌려준 보답은 2006년 10월의 1차 핵실험, 2009년 5월의 2차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대한민국과 미국, 일본에 대한 위협도 모자라 한반도의 긴장을 지속적으로 고조시키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북한 내부에서는 세계사적으로 유례가 없는 3대 세습이 진행 중이어서 북한의 향후 거취는 세계평화의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는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특히 한반도에서의 전쟁 재발은 민족의 이름으로 용납할 수 없다. 59년 전에 겪은 ‘남침전쟁’만으로도, 전쟁이 민족을 자해하고 분렬시키며 그 누구도 승자와 패자가 될 수 없는 자멸의 철학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이제 북한은 변화할 때가 됐다. 핵을 내세워 고립을 자초하기보다는 핵을 포기하고 평화 테이블에 나서기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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