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6일부터 18일까지 12박 13일에 걸쳐 시베리아의 중앙인 이르쿠츠크에서 출발하여 만주 대륙을 가로지르는 대륙철도횡단 행사가 있었다.
한국철도대학과 안중근 하얼빈 학회가 주관하고, 철도협회, 철도공사, 철도시설공단, 국회 국토해양위원회, 동북아재단 등 여러 기관의 후원 하에 진행된 이 행사에는 역사학자, 문화계 인사, 교수, 기업가, 언론인, 철도관계자, 대학생 등 180여명이 참가하였다. 행사의 목적은 올해 110주년을 맞는 우리나라 철도와 10월 26일 100주년을 맞이하는 안중근 장군의 하얼빈 의거를 기리기 위한 것이다.
언뜻 보면 철도와 안중근 의거, 항일운동의 역사와 철도의 연관성에 대해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철도의 초기 역사를 생각하면, 철도는 일제의 수탈과 침략의 수단이며, 일본 제국주의의 대륙침탈의 도구였다는 인식이 앞서, 항일운동과 철도는 오히려 서로 대척하는 것으로 여겨지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별열차를 이용하여 만주를 방문한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 역에서 포살한 안중근 장군의 의거에서 철도는 매우 중요한 배경으로 등장한다.
안중근 장군이 의거를 위해 동청철도(1910년부터는 중동철도로 칭함)의 종착역인 블라디보스톡(더 정확하게는 인근 우수리스크)역에서 출발하여 하얼빈에 도착하는 열차로 이동하였고, 의거 자체가 하얼빈 역사 안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하얼빈 의거를 위해 조달된 군자금의 상당액이 열차운임을 지불하는데 쓰여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동청철도의 시각표와 운임표에 따르면 가장 빠른 특급열차의 경우 하얼빈-블라디보스톡 간 운행시간은 34시간 30분, 운임은 약 30루블 수준이었다.
이는 당시 고소득층에 속했던 공장근로자의 2달치 월급에 해당하는 것이고, 소한마리가 45루블, 버터 1Kg이 0.74루블, 닭 한 마리가 0.5루블 등의 물가와 비교하면 상당히 큰 금액임을 알 수 있다.
안중근 장군은 러시아 연해주에서 시베리아, 만주 지역에 이르기 까지 대륙을 누비며 펼친 의혈 구국 활동 과정에서 그 누구보다도 먼저 철도를 문명의 이기로 받아들이고, 적극 활용한 분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그동안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은 항일운동에 있어서의 철도의 의미와 역할, 19세기 말 동북아 지역에서 벌어졌던 영토 확장 전쟁에 있어서의 철도의 역할에 대해 새로운 조명이 필요한 시점이다.
제2차 산업혁명의 상징으로 제국주의 침략의 수단으로 이용되던 철도가 21세기 들어 친환경 녹색성장의 상징으로 그리고 국경을 넘어 대륙을 통합하고 인접국가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글로벌 협력체계의 모델로 새로운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철도는 1899년 9월 18일 노량진-제물포 간에 첫 기적소리를 울린지 올해로 110주년을 맞이한다.
우리 철도는 비록 일제의 기술과 자본으로 출발하였지만, 세계에서 5번째로 고속철도를 운영하고 세계에서 4번째로 고속철도를 자체 제작하는 등 기술자립화를 이룩하였고, 나아가서 기술 수출국의 위상을 달성하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어려운 성공사례를 만들어 냈다.
이번 탐방단은 12박 13일 동안 안중근 장군의 하얼빈 의거루트를 포함하여 6,000 Km에 가까운 철도로 이어진 ‘역사의 길’을 이동하였다. 시간으로 환산하면 100시간 가량을 열차 안에서 보냈고, 러시아와 중국의 침대열차에서 6일 밤을 잤다.
일제 시대 조국의 독립과 해방을 쟁취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항일투쟁을 벌였던 선조들의 희생이 스며있는 이 ‘역사의 길’은 더 일찍이는 고구려, 발해 시대에 이르는 민족의 발자취가 어려 있는 길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 탐방단은 유라시아 대륙으로 뻗어나가는 대륙철도를 여행하며 이와 같은 ‘역사적 유산의 길’이 곧 ‘미래의 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남북철도가 복원되고, 시베리아 철도, 만주철도와 연결된다면, 우리나라와 러시아, 나아가서 동북아 지역의 모든 사람들에게 상생과 평화, 공동번영을 가져 올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안중근 장군이 오늘날까지도 우리나라 국민은 물론이고, 중국이나 일본에서 조차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것은 그가 실현하고자 했던 동양평화사상, 즉 국경을 초월한 인류의 평화 공존과 공동 번영이라는 가치야말로 10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우리 모두가 갈구하고 있는 보편적 가치이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