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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룡문] 9·15와 맥아더

이창식 주필

어제가 9.15 인천상륙 59돌이었다. 인천상륙작전은 9월 12일 오후 3시 30분 함대기동사령관 스트러블 중장의 기함 로체스터호가 일본 사세호 (佐世保)를 떠나 인천항으로 향하면서 시작됐다.

맥아더 사령관은 원래 로체스터호에 탑승할 예정이었으나 상륙상황을 보다 가까이에서 관측하고자 했던 장군 자신의 요청에 따라 도일 제독의 기함 마운트 매킨리호에 탑승했다.

그날 오후 태풍 케지아 때문에 항진에 어려움이 있었으나 작전에는 지장이 없었다. 13일 아침 월미도 전방에 집결한 로체스터호, 톨레도호, 영국 해군 자메이카호와 캬냐호 등 순양함들이 전투기의 호위 아래 하오 1시부터 월미도에 함포사격을 가했는데 이 때 아군 장교 1명이 전사하고 사병 8명이 부상당했다.

그런데 평양방송은 유엔 함정 13척을 침몰 또는 파손시켰고, 적의 인천 상륙에 대비해 10척의 함정을 급파하였다고 허위 보도를 했다. 이미 여러 차례의 폭격으로 초토화되어 있었던 월미도는 15일 새벽 5시 45분 함포사격이 시작되면서 포연에 휩싸였다. 상륙작전을 지휘한 대대장 태플리트 중령은 매킨리호에 “8시 현재 월미도 확보” 라고 보고 해왔고, 11시 15분 월미도에 이어 소월미도까지 점령했다. 작전 개시 6시간 30분 만의 1단계 작전 성공이었다. 미 해병대는 17명이 부상한 반면 적의 피해는 사살 108명, 포로 136명에 달했다. 맥아더 장군은 사단장 스미스 소장, 도일 제독과 함께 인천에 상륙해 월미도 점령을 확인한 후 매킨리호 편으로 일본으로 돌아갔다. 한국 해병과 미 해병대는 시가지 소탕작전을 벌여 포로 181명과 다수의 무기를 노획했다. 인천에 잔류한 스미스 장군은 행방을 감춘 인천시장 후임으로 손원일 제독이 추천한 표양문(表良文)을 임시 인천시장으로 임명하고 9월 18일 오전 시청 광장에서 취임식을 가졌는데 이날 취임식에서는 국문과 영문으로 된 상륙군사령관 명의의 임명장이 낭독되기도 했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고 했던 맥아더는 1964년 타계했다.

하지만 그는 인천자유공원에 동상으로 남아 월미도 앞바다를 내려다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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