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이벤(陳水扁·58) 전 대만 총통과 그의 부인 우수전(吳淑珍·58)은 국무기요비(기밀비) 횡령 및 정치자금 수수, 돈세탁 등의 혐의로 무기징역 선고를 받고 복역 중이다. 또 부모의 돈세탁을 도와준 아들 천즈증(陳致中)과 며느리 황루이징도 실형과 벌금형 선고를 받았다. 차이서우쉰(蔡守訓) 재판장은 “국민에게 모범을 보여야할 피고인들이 비리를 저질러 국민을 실망시켰고, 범행을 감추기 위해 위증했기 때문에 중형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천수이벤은 정치적 음모라며 무죄를 주장하고 있지만 국민의 시선마저 싸늘해 고립무원의 신세가 되고 말았다. 1994년말 실시한 타이페이(臺北) 시장 선거에서 61만 5000표를 얻어 여당(국민당) 후보를 25만표 차로 누르고 당선되었을 때 천수이벤은 대만의 ‘뜨는 별’이었다. 그는 “중국 정치사상 가장 서민적 매력을 지닌 민의의 대표, 특권을 공격하고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명수”라는 극찬을 받았다. 같은해 11월 29일자 타임지는 세계 뉴리더 100인 가운데 한사람으로 천수이벤을 뽑았다. 그는 가난한 농가 태생으로 초·중·고·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했는데 대학 3학년 때 변호사시험에 합격해 당시로서는 전국 최연소 변호사이기도 했다. 시장에 당선되고 나서 말린 숭어알 선물을 받았는데 말린 파파야로 오인할 정도로 값진 식품에 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다고 한다. 대만의 한 잡지사가 ‘대만 여성이 연인으로 삼고 싶은 남성 100인’ 을 설문한 결과 천수이벤이 7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민주화를 위해서도 한몫을 했다. 1979년말 민중과 경찰이 충돌한 미려도(美麗島)사건 때 변호를 맡았고, 자신도 1986년 민주화 운동에 연루돼 8개월 동안 감옥살이를 한 바 있다. 그는 집권 기간 동안 일관되게 “대만은 중국의 일부가 아니다”라며 독립을 주장했다. 중국으로서는 곱게 볼 수 없는 ‘이단자’일 수밖에 없었다. ‘영원한 첫째’로 꼽히던 그가 회생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돈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것이 화근이다. 돈은 악마의 미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