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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칼럼] 의학을 제왕의 덕목으로 여긴 정조

세자시절 수민묘전 저술
백성·노인 위한 의서 편찬

 

정조대왕은 조선후기 조선의 르네상스라고 할 만큼 학문을 부흥시킨 왕이었다.

그런 그가 직접 편찬한 의서가 있다는 것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의학이라는 것은 모든 백성을 구제하는 것이므로 부모를 섬기는 자라면 마땅히 의학을 알아야만 한다. 의학이 어찌 천한 것이 될 수 있겠는가, 동방의 풍속이 방술에 종사하는 것을 천하게 여기며 부끄러워하나 그것이 유학을 숭상하는 자의 소임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의학도 또한 유술의 일단이라 할 것이다.

내가 어릴 적 의서를 공부하여 영조 42년부터 영조 52년까지 선대왕의 환후를 직접 보살피기 위해 허리띠를 풀지 않고 10년 동안 맥과 약초에 대하여 공부를 한 바 있다. 사람의 품부가 옛날과 지금이 다르고 동서의 풍기가 같지 않다. 고금의 의서 중에서 우리나라의 현실에 적합한 것은 오직 양평군 허준의 동의보감 하나뿐이다. 그러나 그 이론과 처방이 서로 혼잡되어서 그 체제가 자뭇 정리된 느낌을 가지지 못한다. 내가 그것을 정리하고 요점만을 취하였다. 또 탕액, 각 처방은 별도로 속편으로 삼았으니 이것을 수민묘전이라 이름 지었다.”

중국과 우리나라의 제왕이나 왕족 중에서 의학에 밝고 의서를 직접 써낸 경우는 여러 사례를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여러 왕들이 집권 중에 의서를 편찬하도록 지시한 경우는 많으나 직접 의서를 공부하고 친찬한 경우는 많지 않다.

대표적으로 세조가 의약론을 지은 기록이 있을 뿐이고, 정조처럼 10여년을 의학에 몰두해서 의서를 써낸 경우는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수민묘전의 책머리에는 동궁의 직인이 있음을 봐서 이 책은 세자시절에 저술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민묘전의 편찬 목적을 살펴보면, 저자의 의중을 담은 책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지만 백성들의 무병장수를 바라는 목적으로 보다 쉽게 질병을 치료, 예방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정조의 저술 나이가 의학적 경험이 일천한 세자의 어린 시절이기 때문에 정조가 염원하는대로 모든 의사들의 필독서로써 자리잡지는 못하였다고 생각되고 일반 백성들도 널리 이 책을 읽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영조의 병후를 살피는 과정에서 그 저작 동기가 발로된 점을 고려해 볼 때 다른 책과는 달리 효심에 기초한 노인들의 양생법과 치료법이 좀 더 보강되어 있는 것이 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수민묘전이 저술된 정조 시대 의학의 특징을 살펴보면, 정조의 수민묘전 저술과 강명길을 통한 제중신편의 출간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정조 시대에 문화적, 경제적, 사회적 활력이 의학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는 조선 시대 후기 영정조 시대의 의학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영조의 10년 환후를 직접 돌봐야 했던 왕세자 정조의 상황은 그가 저술한 수민묘전과 제중신편에서도 그 전과 다른 뚜렷한 두 가지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그 첫 번째는 번잡하고 정리가 일목요연하게 되어 있지 못한 의서들을 깔끔한 체계 하에서 그 핵심만을 취하여 정리하고자 하였다는 것이다.

그런 집필 의도는 수민묘전 서문에서도 나타나고 강명길이 저술한 제중신편에도 또한 나타난다. 제중신편의 범례를 살펴보면 이곳에서도 정조의 주장이 그대로 담겨져 있음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두 번째는 다른 시대의 의학과 달리 노인병과 노인의 건강유지 양생법에 대하여 특별히 강조하고 증보한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어린 시절 정조가 가진 효에 대한 가치관이 의서의 집필 과정에서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세종대왕의 한글 편찬 과정과 의미, 의도를 서문을 통해서 유추해 볼 수 있듯이 정조대왕의 의학에 대한 사랑과 편찬 의도, 의미 그리고 특징을 그 서문을 통해서 살펴보았다.

조선 전기에 백성을 위하여 한글을 제정한 세종이 있었다면, 조선 후기에는 백성과 노인을 위한 의서를 편찬한 정조대왕이 있다고 보는 것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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