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가족부와 기획재정부가 지난 12월 15일 ‘투자개방형 의료법인 도입 필요성 연구’에 대한 용역 결과를 발표했다. 이 연구는 보건산업진흥원(이하 진흥원)과 한국개발연구원(이하 KDI)이 합동 연구팀을 구성해 연구했으나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하고, KDI는 영리법인 허용에 적극 찬성 입장을 보였고, 진흥원은 “산업적 측면에서는 기대 효과가 있지만, 동시에 보건의료체계적 측면에서는 부정적 영향도 상당한 것”이라며 애매한 입장을 보였다.
지난 12월 11일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은 “의료계도 어차피 다 돈 벌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 “영리의료법인 육성이 서비스 발전의 초석”이라는 식의 발언을 했고, 정부의 연구결과를 발표한 15일에도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밀어붙이기식’으로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기까지 했다. 복지부는 신중한 반면 기재부, 지경부 등 경제 부처는 영리병원 도입의지가 매우 높다. 전반적으로 현 정부의 시장만능주의 정책 기조로 볼 때 영리병원을 추진할 가능성이 매우 높고, 우리 국민에게는 재앙이 될 것이다. 영리병원, 영리(의료)법인, 투자개방형 의료법인 등으로 이름은 여러 가지이지만 내용은 자본을 투자한 사람들이 투자 지분을 유지하고 이익을 가져갈 수 있는 형태의 병원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영리병원 추진파들은 영리병원이 많아지면 서로 경쟁을 해서 의료비는 하락하고 서비스는 더 좋아질 것이고 서비스 질을 높이기 위해 일자리도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 주장은 자체로 모순을 가지고 있다. 제조업이라면 투입되는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기술 혁신이나 공정 혁신이 가능하지만 서비스업인 병원에서는 의료비를 줄이려면 저가의 의약품이나 기기를 쓰거나 인건비를 줄이거나 다수의 환자를 보기 위해 환자 보는 시간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 미국의 경우에 의료서비스 상위 18위 내에는 모두가 비영리병원이다. 미국의 영리병원이 비영리병원보다 사망률이 높고 합병증 발생률도 높다는 것도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그리고 영리병원이 이윤추구를 위해 응급실과 같은 필수적 진료를 포기하고 대도시집중현상이 일어나 병원에 대한 접근성마저 떨어지는 것도 잘 알려져 있다. 고용창출 효과면에서도 미국 비영리병원이 100병상당 35명을 고용하는 반면 영리병원은 22명을 고용하고 있다. 이윤추구를 위해 의료인력을 덜 쓰려는 영리병원의 당연한 결과인 것이다.
물론 일부 특수계층을 위한 초호화영리병원은 가능할 것이다. 돈이 얼마가 들던지 상관없이 최고의 서비스를 원하는 시장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민의 보편적 건강권이라는 차화서 보면 의료의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위화감만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현 정부에서 일부 극소수 부유층을 위해 이런 병원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굳이 영리병원제도를 도입해서 전체 의료체계를 흔드는 방식이 아니라 기존의 대형 병원 중 원하는 병원에 일부 병상(약 10% 정도)을 이런 용도로 허용해주면 될 일이다.
실제 영리병원 도입의 가장 큰 문제는 그렇지 않아도 매년 빠르게 상승하고 있는 의료비의 급격한 상승이 될 것이다. 미국의 영리병원의 경우 비영리병원보다 1인당 의료비가 20% 더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진흥원의 연구결과를 보더라도는 현재 건강보험당연지정제 등의 모든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도 개인병원 중 20%만 영리병원으로 전환하더라도 연 1조5천억원의 의료비부담이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비급여진료의 경우에도 1% 늘면 연 1천70억원이 늘어날 것이고, 비급여진료가 20% 늘면 연 2조원이 늘어날 것이라는 예상이다. 하지만 진흥원은 영리병원 허용시 비영리병원 의료비가 동시에 상승하는 효과(spill-over effect)나, 비영리병원이 영리병원으로 전환하게 될 때의 비용을 계산하지 않았다.
이런 효과까지 계산한다면 영리병원 허용시 국민의료비 폭등은 너무나 명약관화하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국민은 온갖 불안 속에 살고 있다. 시장만능, 승자독식, 무한경쟁의 시스템 속에 자녀 교육을 위해 일자리를 구하고 밀려나지 않기 위해 집이라도 마련하고 내 가족이라도 지키기 위해 각개약진하면서 치열하게 살고 있다. 집이 있고, 돈이 좀 있는 사람도 도대체 얼마를 벌어야 안심하고 살 수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모두가 불안하고 서로가 불행한 이 시스템 속에 영리병원제도를 도입해서 건강마저 더욱 시장만능주의 속으로 깊게 들어가게 하는 것만큼은 그만두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