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내년 예산안이 언제쯤 국회에서 통과될 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태다. 여야는 부별 심의와 계수조정을 지금부터 바로 시작한다고 해도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그나마 극적으로 타협이 이뤄진 뒤 세세한 부분에서 막히는 일이 없어야 겨우 마지막날 본회의를 열어 예산안을 통과시킬 수 있을까 말까 한 상황이다. 여야 지도부도 가슴이 답답하고 애가 타겠지만 국민은 준예산까지 거론되는 요즘의 상황에 절망하고 있다.
준예산이라는 것은 회계연도 개시 전까지 국회에서 예산안이 의결되지 못할 경우 전년도에 준해 정부가 집행할 수 있는 예산을 말한다. 이는 지난 1960년 개헌 당시 내각책임제 아래서 국회가 해산되는 상황을 가정해 도입한 제도로, 한번도 실제 편성된 적은 없다. 한마디로 누구도 예측하기 어려운 돌발·비상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만든 제도이기 때문에 그동안 편성된 일이 없었던 것은 당연하다.
준예산은 법에 의해 설치된 기관이나 시설의 유지·운영비, 법률상 지출의무 이행, 계속사업비 등을 위해서만 집행할 수 있을 뿐 신규사업이나 정책을 위해서는 돈을 쓰지 못한다. 따라서 중증장애인연금, 취업후 학자금 상환제도 지원 등의 서민·중산층을 위한 신규지원사업과 무상보육 대상 확대, 사회복지시설 지원 등 서민 지원 확대정책도 보류될 수밖에 없다. 결국 서민이 가장 먼저 직접적인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준예산 편성사태를 막아야 되는 1차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죽 답답했으면 김형오 국회의장이 4대강 사업예산을 둘러싼 논란의 해결책으로 “국회에서 ‘대운하가 아니며, 앞으로도 대운하를 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여야 공동선언을 하고 필요하면 결의안을 채택하자”고 제안했을까. 하긴 야당은 4대강 예산이 대운하로 가기 위한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는 반면 여당은 대운하가 아니라 홍수에 대비하고 4대강을 살리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현재의 상황에서 구속력 있는 선언이나 결의안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야가 그런 선언을 하고도 4대강 예산에 대한 기존의 입장에서 물러나 양보를 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없는 일이다. 그것보다 지금은 여야 지도부가 4대강 예산에 대해 대승적으로 결단을 내려야 할 때다. 내년 예산의 1.2%에 불과한 예산 때문에 전체 예산이 발목을 잡히고 서민의 시름이 깊어지는 사태는 이제 끝내야 한다. 부디 여야 지도부가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정치인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