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은 유난히 추위가 맹위를 떨친 날들이 많았고, 그런 날씨 속에서 잔뜩 몸을 웅크린 채 지내왔던 것도 사실이다. 몸을 움츠리고 지내다 보니 자연히 마음의 문도 닫아 두고 지내온 것 같다.
다음에 소개될 이야기의 주인공이 지금까지 남몰래 행해온 훈훈하고 아름다운 선행으로 인해 필자의 마음 한구석에 켜켜이 쌓여있던 세상살이의 속된 생각들이 말끔히 지워진 것 같아 더욱 활기찬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맞고 있다.
필자는 지난해부터 전근명령을 받고 여주보호관찰소에서 책임관으로 근무하고 있어 이번 선행의 주인공인 그녀를 알게 되었고, 미담이지만 보호관찰대상자인 그녀가 “그저 평소처럼 조용히 그들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는 뜻을 존중하여 그녀의 기본적인 인적사항 등은 밝히지 않고 미필이나마 그 사연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보호관찰소는 법을 위반한 사람들을 교도소나 소년원에 구금하는 대신에 사회 내에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영위하게 하면서 보호관찰관의 지도감독을 통하여 범법자의 재범을 예방하고, 그들이 건전하게 사회에 복귀를 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처우를 실시하는 법무부 산하의 국가기관이다.
여주보호관찰소는 과거 본소인 수원보호관찰소가 관할해오던 여주, 이천, 양평 3개 지역을 관할하는 보호관찰소로 2007년 7월 23일 개청했다.
그녀가 여주보호관찰소에 오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음주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 때문이었고, 그로 인해 그녀는 수원지방법원 여주지원에서 사회봉사명령 80시간과 보호관찰 2년을 선고받게 되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처음에는 그녀도 대부분의 사회봉사명령 대상자가 느끼는 막연한 두려움과 강제된 봉사명령이라 내키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사회봉사명령 장소에 배치가 되어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사회봉사명령이 시작되는 날 ‘시작이 반’이라는 마음으로 자신에게 용기를 북돋우는 주문을 여러 차례 걸어가면서 떨어지지 않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사회봉사활동을 하도록 지정받은 곳은 이천시 부발읍 무촌리에 있는 ‘효양동산’으로 장애우들의 재활프로그램을 실시하는 복지시설이었다.
그곳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하는 첫 날부터 그녀는 평소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몹시 부끄러워졌고, 장애를 가진 이들은 자신과 전혀 다를 것이 없는 동등한 인격체이며 오히려 그들이 해맑은 마음에 감동받았고, 어려운 신체적인 조건속에서도 늘 웃음을 잃지 않는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사람들이라는 부러움까지 들 정도였다고 했다.
그녀는 하루도 빠짐없이 사회봉사활동을 성실하게 이행하여 열흘간의 사회봉사명령을 모두 마치게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두웠던 과거나 힘들었던 상황에서 벗어나면 가급적 빨리 그때 일을 잊어버리고,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어하겠지만 그녀는 달랐다.
그녀는 사회봉사활동을 하면서 정들었던 장애우들과 인연의 끈을 놓지 않고 2009년 6월 중순 사회봉사명령을 모두 끝마치고도 지금까지 직장에 출근하지 않는 날은 언제나 ‘효양동산’을 찾아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녀가 일하고 있는 직장에서 직원들을 설득, 적극적인 모금운동을 전개해서 모아진 성금을 형편이 좋지 못한 장애우에게 전달하는 등 선행을 유지해오고 있다.
그녀는 오래전부터 노환으로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부양하며 생활해 오는 결코 넉넉하지 못한 생활형편에 있었고, 피곤에 지친 일상 후의 꿀맛 같은 휴일이 찾아올 때면 휴식을 취하고 싶은 마음이 앞설 때도 많았지만 그녀를 기다리는 장애우들의 간절한 눈빛을 외면할 수 없어 봉사활동을 계속하고 있으며, 고단하지만 그들과 나눈 시간들은 세상에서 가장 값진 시간들로 언제나 자신에게 무한한 행복을 가져다 준다고 했다.
그녀는 분수로서 자연수를 나누면 결과는 곱셈으로 나타나고, 그 분수가 가장 작아질 때 가장 큰 값이 산출되어 진다는 사실을 아는, 큰 사랑 작은 나눔이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안겨준다는 가치를 알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 우리 동네 이웃임에 더욱 가슴이 따듯해져 온다.
경인년에는 이러한 작은 나눔들이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이 되어 좀 더 인정이 오가는 세상이 되기를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