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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초반 어느 해 여름, 한 낯선 중년남자가 한적한 농촌마을 이장 집을 찾아왔다. 왜소한 체구에 선한 모습의 그 남자는 마을 이장에게 살 곳을 구해달라고 청을 넣었다. 일면식도 없는 남자였지만 오죽 다급했으면 자신을 찾아왔을까, 곰곰이 생각하던 이장은 마침 마을의 외진 곳에 비어있던 배나무 집을 생각하고는 선뜻 ‘그러고마’ 약속을 했다. 그리고 며칠 뒤 그 남자는 아내와 올망졸망한 사내아이 셋을 데리고 배나무 집으로 이사를 왔다.

무슨 사연으로 아무 연고도 없는 곳을 찾아 이사를 왔는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그 집 식구들이 얼마나 성실하게 열심히 살고 있는지는 익히 들어 알 수가 있었다.

가까운 공장에 다니며 과수원 일을 하는 틈틈이 이장네 논에 들러 마치 제 일처럼 도와주는가 하면 마을 대소사에도 빠지는 법이 없었다. 해가 바뀌고 추석이 되자 부부는 수확한 배 거운데 가장 좋은 걸로 한 상자를 포장해 이장네로 인사를 왔다. 그렇게 시작된 배 한 상자의 인연은 추석과 설날을 앞두고 해마다 이어졌다. 그러던 중 그곳에도 도시화 바람이 불어 배나무 밭에는 아파트단지가 들어섰다.

이젠 배 밭도 없어졌으니 그만두려니 했던 생각은 여지없이 깨져버렸다. 됐으니 그만두라고 만류해도 명절을 앞두고 최상품으로 포장된 배 한 상자는 어김없이 이장 집을 찾았다. 세월은 흘러 마지막 추석 선물을 받은 이장은 얼마 지나지 않아 2008년 10월 인정 많은 삶을 마감했다. 그러고 나서 다시 맞은 섣달 그믐날, 어느덧 칠순의 노인이 된 그 분께서 아들에게 배 상자를 들리고 이장 집을 찾았다. 이번 추석도 예외는 아니었다.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던 추석 전 날 저녁, 그 분 대신 부인이 아들과 함께 이장 집을 찾아왔다. “이젠 괜찮으니 그만 두세요”. 아들이 대답했다. “아닙니다. 아버님께서 적어도 당신이 돌아가시기 전까진 계속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야기를 듣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 졌다. 세상은 결코 각박하지 않다는 것을 깨우쳐준 이 아름다운 가족에게 지면을 통해서나마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이해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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