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을 추억하면 영화 ‘내 마음의 풍금’처럼 그립다. 학교가 가르쳐주는 것은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던 시절, 아직도 또렷이 떠오르는 노랫말이 있다.
‘일공일칠 유신은/김유신과 같아서/삼국통일 되듯이/남북통일 되고요//근대화에 목말라/바가지에 물 떠서/목마른 자 물주는/바가지가 되어요’. 동요 ‘산토끼’의 곡조에 맞춰 부르던 이 노래다.
당시엔 학교에 가려면 동네 어귀에 모여 학도애향단 깃발을 앞세우고 줄을 맞춰 노래를 부르며 갔다. 봄여름 동안 가꿨던 길옆 코스모스가 한창일 무렵 단행된 10월 유신은 이렇게 동심을 노래로 세뇌시키고 있었다.
앞서 1970년 시작된 새마을운동 노래를 보면 ‘우리 모두 굳세게 싸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싸워서 새조국을 만드세’란 말이 나온다. 1968년 1·21 사태로 김일성의 호된 도전을 받았던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싸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싸운다’는 구호를 내걸고, 이를 실천에 옮긴다. 바로 향토예비군 창설이다. 이처럼 1968년은 한국 현대사의 일대 전환점이 됐다.
‘국민교육헌장’이 제정된 것도 그 해였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김일성의 도전에 직면해서도 계엄령을 내린다든지 하는 독재적인 방법을 쓸 수 없었다.
국회와 야당, 그리고 언론이 주도하는 자유민주주의적 정치구조가 그런 독단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처럼 박 대통령은 북한은 물론 국책사업에 사사건건 반대하는 야당과도 싸워야 했다.
그는 점차 이런 정치적 코스트가 너무 비싸다고 생각하게 된다. 1970년대의 한국처럼 단기간에 국운을 건 승부를 해야 하는 나라에서는 정치적 자유를 제약하고 국력을 조직화해 능률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것이 대통령에게 초헌법적 권력이 집중되는 10월 유신의 배경이 된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여권 핵심 인사들에게 “대통령을 해보니 권력이 너무 대통령에게 집중돼 있다”며 개헌을 시사했다.
따라서 ‘개헌’은 집권 후반기 정치개혁의 화두가 될 전망이다. 말하자면 ‘분권형 대통령제’로 가자는 것인데 유력한 대권주자들은 이에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하니, 왠지 ‘유신의 그늘’이 생각난다.
/이해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