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TV오락프로그램을 보다가 처음엔 유쾌했다가 나중엔 숙연해졌다.
1970년대의 유명한 음악 감상실 세시봉시대의 4인방-조영남,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氏 가 출연해서 옛날을 회상하면서 말장난을 주고받을 때만 해도 즐거웠는데….
그 가운데 나이 제일 많은 조영남氏가 가수들이 죽으면 영결식장(永訣式場)에서 후배들이 돌아가신 분의 대표작을 부르는데, 자기는 화개장터, 딜라일라를 부르지 말고 이 노래를 불러달라고 유언하겠다나.
지긋히 눈을 감고 노래를 부르는데, 생소(生疎)했다.
그때 주위 배경은 시간도 자정(子正)에 가까웠고, 약간의 바람도 불어 초가을의 냄새가 진했으며, 거실에는 아내와 둘만 남았다.
노래가 뭉클 가슴에 와 닿을 조건이 구비 돼 있었다.
노랫말 일절만 소개 한다.
모란은 벌써 지고 있는데
먼 산엔 뻐꾸기 울고
상냥한 얼굴 모란아가씨 꿈속에 웃고 있네
세상은 바람 불고 고달파라
나 어느 변방에
떠돌다 떠돌다 어느 나무 그늘에
고요히 고요히 잠든다 해도
또 한번 모란이 될 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영결식장에 멋들어지게 어울릴(?) 노래이다.
스스로 음치(音癡)라고 자처하면서 TV의 “가요무대”와 “전국노래자랑”을 외면하는 아내 마져 정말 좋은 노래라고 감탄하면서 배워보길 부추겼다.
그런데 자막(字幕)에 모란동백 이제하 작사 작곡 이렇게 소개 됐다.
이상문학상(李霜文學賞)을 수상한 이제하(李祭夏) 선생? 설마하니…, 바로 그 분이였다.
그 당시 소설제목을 길어도 다섯자를 넘지 않은 시대였는데, 이제하 선생의 소설 제목은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나의 못난 기준으로는 훌륭한 소설일수록 쉽고 재미있어야 하는데, 반대로 어렵고 무척 재미없었다.
‘이상문학상’ 이라고 하면 김승옥, 이청준, 최인호, 이문열…, 모두 대가(大家)의 반열(班列)에 올랐는데…, 그런 분이 왠 대중가요 냄새가 나는 노래를 작곡 작사를 하나니.
김영랑 시인의 모란, 조두남 선생의 동백-모란이 되기까지의 영랑시인과 조두남 선생을 기리는 깊은 사연이 있었다.
본시 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했는데, 소설가, 시인, 화가, 대학교수 나이 환갑에 이 노래를 발표했으니 가객(歌客)-르네상스적 예술가라고 이름 붙일까?
그러나 우물이 넓으면 깊지가 않다. 무엇이든 다방면에서 활약하면 어느 것, 하나쯤은 하대(下待)받기 마련이다.
그리고 세상의 명리(名利)를 위해 매명(賣名) 하는 것은 아닌지 오해받기 마련인데, 그것이 아니었다.
이상 문학상 수상 소감에 ‘민중(民衆)이란 어느 계층의 전유물이 될 수 없고 열등감 이건 실제 노동을 하기 싫어서 민중을 팔던 특수 계층이 될 수 없다. 나는 개체로서의 민중이기 때문에 그들의 등에 업힐 수 없다.’
그 말에 동의하던 그렇지 않던 간에 시대(時代)와의 불화(不和)를 겁내지 않는 당당함!
또 있다. 현대 문학상에 그의 작품이 수상작으로 결정됐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거부했다.
수상 소감을 마음에도 없는 말로 기록하기 싫어서, 배고프고 추웠지만 많은 상금을 거절했단다.
문단에 친한 사람도 별로 없다는 이제하 선생은 참으로 고지식한 삶이다.
이런 저런 사연을 알고 더욱 모란동백이 좋아서 열심히 배웠는데….
일껏 감정을 잡고 관객 한명을 앞에 두고 공연을 했는데, 일절이 끝나 후 눈을 지긋히 감고 있어 좋은 평점을 받는 줄 알았는데, 아내 왈 “노래 버리겠어요 앞으로 이 노래는 부르지 마세요” 김샜다.
그래도 악착같이 2절까지 불렀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