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이나 주말이면 문을 연 약국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심야 응급약국이 운영되고 있기는 하지만 늦은 밤에 이들 약국을 찾아 헤매는 것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의사의 처방전이 없이도 쉽게 구입할 수 있는 감기약이나 반창고 등 일반의약품을 가까운 슈퍼에서도 구입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구는 끊임 없이 제기돼 왔으나 이익단체의 대립으로 끝내 무산되고 말았다.
지난 2009년 4월 이명박 정부 제2기 경제팀을 주축으로 추진돼 온 일반의약품 약국외 판매 논의가 부처간 이견차이로 중단되기도 했다. 기획경제부 등 경제부처가 추진해 온 일반의약품 약국외 판매 정책이 복지부의 반대로 인해 무산된 것이다. 재정기획부와 보건복지가족부 간의 힘겨루기 싸움에서 복지부가 승리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간 잠잠하던 가정상비약의 약국 외 판매 논란이 요즘들어 뜨겁게 달아 오르고 있다. 논쟁은 지난해 말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감기약 등의 슈퍼마켓 판매에 관심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시작됐다. 25개 시민단체들은 최근 ‘가정상비약 약국 외 판매를 위한 시민연대’를 결성하고 약국에서만 의약품을 판매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현행 제도의 개선을 촉구했다.
시민연대는 이 참에 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를 성사시키기 위해 대국민 서명운동과 국회입법청원, 정부 및 정당 관계자 방문, 국민권익위원회를 통한 고충제도 개선요구 등 활동 방향까지 마련해 놓았다고 한다. 개원 의사들의 모임인 대한개원의협의회와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도 시민연대의 찬성 입장과 뜻을 같이 한다. 대부분의 의료 선진국들처럼 인체에 미치는 약리학적 영향이 경미하고 부작용의 우려가 없는 의약품을 약국 이외의 장소에서 판매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소비자의 선택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대한약사회의 입장은 단호하다. 아무 곳에서나 의약품을 판매하게 되면 오남용으로 인해 국민의 건강이 심각하게 위협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약의 오남용은 국민 건강 차원에서 중요한 문제임에는 틀림없다. 약품 구입이 쉬워지면 그 후유증은 만만찮을 것이다.
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의 78%가 일반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에 찬성했다고 한다. 가정상비약 구입과 관련해 국민이 느끼는 불편함의 정도를 짐작케 한다. 일반의약품을 슈퍼마켓 등 약국외 장소에서 판매를 허용하되 대상 약품의 종류를 심사숙고해 선정하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