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삶, 만족스런 인생을 위한 조건 중 삶의 질과 더불어 돈과 명예, 건강 및 권력이 그 조건이 된다고 말하는 데는 주저 하지 않는다.
행복의 조건에 대해 개인은 가치나 철학, 이상향에 따라 각기 다른 차이를 보인다. 개인에 따라서는 어느 수준 이상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행복하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면 행복은 무엇인가. 미국의 심리학자가 연구한 결과를 보면 행복은 풍요로운 물질과 지적인 능력 그리고 사회적 명성이 기준이 아니라 배우자와의 믿음과 사랑, 가족 간의 유대감, 장래에 대한 희망 등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과거에 비해 우리의 삶은 월등하게 풍요로워진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행복을 느끼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보릿고개 시절 친척과 이웃 간에 훈훈했던 정을 그리며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보아도 알 수 있다. 절대적 빈곤이 불행한 것이 아니라 상대적 빈곤이 더 큰 불행이라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실제로 요즘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절대적 빈곤 상태 때문이 아니라 상대적인 박탈감과 소외감 때문에 가슴 아파하고 다른 사람보다 가난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불행을 느끼는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더 많은 부를 만들고 보다 향상된 물질적 환경을 만들지 못해 애태우고 있지는 않는가 싶다.
영국 런던대학의 리차드 교수는 사회가 전체적으로 부유해지면 사람들은 행복감을 더 이상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첫째는, 부유한 생활에 익숙해져 그런 생활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자신의 소득보다 더 많은 소득을 올리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인가. 위에서 열거한 조건들을 갖추면 행복한 건가. 아니면 세속적이고 보편적인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 중 몇 가지 이상, 일정 분량 이상의 수량화로 가늠할 수 있는 것이 행복인가.
최근 대통령이 삶의 질과 행복을 언급했다. 아마 그 말속에는 우리 사회와 국가가 외형 위주의 양적인 성장을 뛰어넘는 진정한 발전에도 관심을 가짐으로, 사회 구성원들의 행복을 담보하는 질 높은 선진문화국가가 되자는 정치지도자의 비전과 철학이 녹아있는 얘기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국민 모두의 삶이 행복해 질 수 있는 것일까. 대한민국이 숙명적으로 짊어지고 있는 압축성장의 그늘에 똬리를 틀고 있는 비리와 잘못된 관행, 부패의 사슬을 끊지 않고는 원천적으로 삶의 질 제고는 불가능하다.
일례로 평범한 국민들이 민감하게 여기는 사교육 문제에 대한 심각성과 그 해결책에 대해 아무리 정치권에서 떠들고 대통령이 언급해도, 자유와 평등의 조화로운 철학이 부재한 우리 사회에서 속 시원한 해결책을 통해 행복한 마음을 갖기란 그리 쉽지 않아 보인다.
소시민 즉 평범한 국민으로 살면서 행복한 마음을 갖기가 쉽지 않은 또 하나의 이유 중 공론(public opinion)이 실종되고, 그 자리를 포퓰리즘이 여론(general opinion)의 가면을 쓰고, 국민의 뜻인 양 행세하는 후진적 정치문화에 있다. 이에 대한 반성과 성찰 없이 ‘행복한 대한민국’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라 여겨진다.
우리 모두가 행복하다고 여기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공동가치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찾아야 한다. 대한민국이 지향하는 바가 동아시아의 패권 국가인지, 국민 개개인의 아름다운 삶에 더 치중하는 복지국가인지,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인지에 대한 바른 척도를 구성하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 편의에 따라 중구난방(衆口難防)으로 가치를 남발하는 정치지도자들은 국민의 행복에 오히려 해악이 되고 있다고 여겨진다.
행복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복된 좋은 운수,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혹은 그러한 상태라 한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사회와 개개인도 행복의 정의를 이와 같이 생각하고 있는가. 마하트마 간디는 행복에 대해 “행복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이 함께 조화할(in harmony)때 주어진다”고 했다.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가, 행복해지기 위해 무엇이 요구되는가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행복에 대한 성찰과 더불어 한번쯤은 “배부른 돼지가 되기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라”는 자조적인 가르침을 생각했으면 싶다. /강준의 용인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