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은 정치란 자연스럽게 백성들의 마음을 따라 하는 것이며, 가장 나쁜 정치는 백성들과 싸우면서 하는 정치다.”(사마천의 사기 화식열전중) 동양 최고의 역사가로 알려진 사마천은 정치의 중요성을 이같이 강조했다.
지난 7일 설연휴가 끝난 후 열린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에서 안상수 대표는 “제가 만나 본 분들이, 많은 분들이 하시는 말씀이, 서민들이 살기가 너무나 어렵다. 서민경제를 살려달라, 정치권이 역할을 제대로 해 달라, 정치권이 뭘 하고 있느냐, 이런 질책의 말씀이 있었다”며 수도권 민심을 전했다.
여야 정치권 인사들은 한결같이 이번 설처럼 국민들 뵙기가 부끄러운 경우가 없었다며 구제역과 전세난, 물가상승에 따른 서민들의 싸늘한 민심을 걱정했다. 4.27 재·보궐선거가 코앞에 닥친데다 내년에는 총선과 대선이 치러질 예정이어서 정치권의 반응이 더욱 무겁게 느껴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국민들은 정치권에 진정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온 나라가 구제역과 전세난, 물가급등으로 시끌시끌 한데 여권은 개헌론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고, 야권은 국회 개원을 합의한 후 하루만에 뒤 집어 버렸다. 어떤 대책을 내놓을 것인가 희망을 기대하던 국민들에게 단 며칠만에 또다시 절망속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국민들이 요구하는 것은 간단하다. 한마디로 진정성이다. 구호만 요란한 선심성 이벤트나 정책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대안을 제시해 주길 바라는 것이다.
경기도의 경우 19개 시군에서 구제역이 발생해 전체 사육두수의 80%에 달하는 돼지가 매몰됐다. 경기북부지역은 사실상 축산업이 붕괴위기에 내몰린 상태이다. 여기에 고병원성조류인플루엔자까지 발생해 양계산업도 위험에 처한 상태이다. 피해액만도 수천여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간접피해까지 더하면 피해액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일부 학교는 개학이 연기됐고, 학교급식도 수급 문제로 변경해야 될 처지에 놓였다. 사회곳곳에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소비자 물가는 급등하고 있지만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월급을 받아도 물가가 올랐기 때문에 제대로 물건을 살 수가 없다. 생활이 더 어려워졌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전세값은 끝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전세대란 여파가 대학가로 옮겨지면서 하숙비도 천정부지로 치솟아 학부모들의 등골을 휘게 하고 있다. 여기에 경기도는 수도권이라는 지역적 특성 때문에 각종 규제를 받아 기업들의 투자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민생 문제를 해결할 국회는 문을 닫고 있고, 정치권은 변변한 대책하나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경기도는 최근에 도내 여야국회의원들과의 정책간담회를 갖고 구제역 진단기능의 지방이양과 구제역 장기화에 따른 교부세 지원에 정치권이 나서줄 것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또 투자활성화를 위해 경기지역 투자촉진을 위한 법제정 등도 함께 건의했다. 이와함께 정부에 전셋값 안정을 위한 저소득 가구 전세자금 지원한도액을 늘려 줄 것을 건의했다. 자구책 마련에 스스로 나선 셈이었다.
결국 여여가 설명절 기간에 수렴한 민심이 코앞에 닥친 4.27 재·보궐선거용이거나 내년에 실시될 총선과 대선용 아니냐는 의구심 마저 들게 하고 있다.
민주당은 9일 수원 경기도당에서 최고위원회를 열어 주거 복지 차원에서 전월세 인상 상한제 및 저소득 무주택자에게 쿠폰 형태로 임대비를 보조해주는 ‘주택 바우처’ 제도의 채택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한나라당도 조만간 전셋값-구제역-물가상승에 따른 당정회의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똑부러진 후속대책이 나올지는 미지수다.
정치권의 이런 행태가 정치에 대한 불신만 커지게 하고 있다. 정치인들이 내놓는 정책과 외침이 단기적인 선거용 구호가 아니라 국민을 위한 진정성 있는 대안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정치인들도 국민과 함께 느끼고 국민의 마음을 따라주길 바라는 것이다.
결국 국민이 원하는 것은 이상적인 선거공약의 나열이 아니라 국민의 마음을 읽고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 주길 바라는 것이다. 사마천의 말대로 ‘국민의 마음을 따르는 정치’ 진정성 있는 정치판이 펼쳐지길 기대해본다. /하태호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