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로부터 ‘스승의 그림자는 밟지도 않는다’ 또는 ‘군사부일체’라는 표현을 써 스승을 존경함으로써 긍지와 자부심으로 학생들을 가르쳐온 모든 선생님들께 경의를 표해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교권이 추락하면서 이같은 우리의 오랜 전통이 퇴색되어 가고 있음이 안타깝습니다. 이에 따라 본보는 스승존경풍토 조성을 위해 각계 인사들로부터 ‘잊지못할 나의 스승’이라는 제목으로 릴레이 기고를 연재합니다./편집자주
사람은 일생을 통해 20대 청년시절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장차 ‘무엇을 할 것이냐’는 일생의 직업과 진로를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서울대 농대 졸업을 앞두고 진로에 대해 긴 시간을 두고 고심했다. 일생일명(一生一命), 한 목숨 바쳐 전력투구할 직업선택은 아주 중요했기에 그렇다.
그 당시 명쾌한 한마디로 고민을 풀어준 분이 바로 서울대 농대 허문회 교수님이셨다. ‘김군! 농협을 선택하게. 가서 할일이 많을 걸세. 그곳을 가게.’ 국민 반수 이상이 농민인데다 매년 식량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던 시대다.
허문회 교수님은 기적의 볍씨인 통일벼를 육종해 우리나라 쌀 자급자족을 실현시킨 주인공이시다. 그러면서도 그 공적은 자신이 아니라고 하셨던 분이다. 우리나라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신 육종학자다. 지난 해 향년 83세로 별세하셨다. 해마다 설날 우리 부부가 세배를 가면 감명 깊은 덕담을 들려 주셨다. 낱말 한 마디 한마디를 힘을 주어 또렷하게 말씀하시던 그 목소리가 내 귓가에 아직도 쟁쟁하다.
사실 나는 언론계에 진출해 평생 해외특파원을 했으면 하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지구촌 구석구석을 누비며 ‘삶과 먹을거리문화‘를 탐구하고 싶은 욕망이 많았다. 신문사 기자 시험과 방송국 PD시험에 응시하여 합격증을 받아놓고 있을 때다. 또한 농협과 유한양행도 합격했다. 유한양행은 당시 농약부문에 사업 확장을 꾀하기 위해 농학계열을 뽑았다.
대학원 진학을 위해 평생 교수가 되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재학 중에는 허문회 교수실에 책상을 마련해 주셔서 허 교수님의 연구를 돕기도 했다.
해병대를 만기 제대한 복학생이라고 뒷짐 지고 있지 않고 적극적으로 후배들과 어울렸다. 문학 동아리에 가입하여 개인시화전도 가지면서 시문학으로 문단에 등단했다. 허 교수님은 이런 나의 행동을 내심 못마땅하게 생각하셨다. 어느 날 ‘김군! 무엇 하나에 집중해야지’ 젊음의 에너지를 생산적으로 써야 된다면서 이것저것 다 참견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젊은 날 내 마음에 밝은 이상의 등불을 켜준 스승이 바로 허문회 교수님이시다. 많은 후학들이 인격적으로 존경하는 스승이셨다.
문제는 ‘어디로 가야 평생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 것인가’를 고민 할 때 허문회 교수님께서 ‘김군! 농협이 할 일이 많을 걸세. 그곳을 가게’ 하며 더 이상 방황하지 말고 선택하라는 그 말씀에 평생을 농협에 몸을 담는 계기가 되었다. 좋은 스승은 깊은 정신적 만남이요 대화다. 결국 나는 잘한 선택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