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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못할 나의 스승] <2> 따스하면서도 엄격한 스승의 모습

 

20년 전, 아니 한 30년 정도 되었을게다 아마도. 내 칙칙한 죄의 흔적과 남루한 실존의 모습을 들여다보면서 불면의 밤을 보냈던 날들이…

그때 나는 지독히도 슬프고 허무하고 무력했다. 수업 시간에도 울고, 술을 먹다가도 울고, 박사학위 논문을 쓰다가도 울곤 했다. 도대체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내 삶은 거대한 해일을 만난 방파제처럼 속수무책으로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코끝에서 죽음의 비린내를 맡으며 살기 위해 버둥거리곤 했다.

30대 중반, 그 한창 좋은 나이에 내 영혼의 등딱지는 쩍쩍 갈라지고 있었다. 온몸의 수액이 마르는 것 같았다. 해질녘이면 한사발씩 죄의식과 무력감을 마시면서 조슥조슥 시들어가고 있었다.

분단의 희생자로 살다간 아빠의 절망과 고통을 신께서 어서어서 거두어가라고 빌던 어린 딸의 죄가 밤마다 망령처럼 나를 괴롭히곤 했다.

냉랭한 다락방에서 밤새워 가꾸던 소녀기의 파란 꿈이 한줌거리도 안되는 허접쓰레기로 전락하는 아픔에 울었다.

자기학대와 자기연민 속에서 나의 인격은 서서히 해체되고 있었다.

죄책감과 무력감에 울면서 꾸역꾸역 박사과정을 채우고 있을 때 만난 분이 서울대 심리학과 이장호 교수님이다.

그분은 내가 공부하던 분야에서 존경을 받던 석학이셨다.

상대를 꿰뚫어 보는 듯한 그 눈빛은 형형하다 못해 서늘했지만, 나에겐 그 서늘한 눈빛이 투명함과 사려깊음으로 다가섰다.

학문을 대하는 그분의 태도는 열정적이고 엄격하였지만 제자를 대하는 그분의 마음은 늘 넉넉하고 부드러웠다.

1986년 봄, 학회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던 길가 어느 포장마차에서 이장호 교수님을 처음으로 만났다.

나는 과장된 제스처로 웃고 떠들어댔다.

그러나 그분은 나의 과장된 표현 그 내면에 감춘 불안과 허무를 읽고 있었다.

이 교수님은 잔잔한 미소와 끄덕임으로 내 말을 경청하셨고, 내 앞으로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계속 가져다 주시곤 했다.

나는 그분에게서 학자로서의 절제된 지성과 따스하면서도 엄격한 스승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스승과 제자간의 진정한 만남과 사랑이 어떠해야 하는 지를 배웠다.

이 교수님과의 참만남을 통해 나는 우울증을 치료하고, 논문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감히 그분을 본받아서 상처입은 영혼을 돌보며 살려고 노력해 왔다.

교단에서 학생들과 진정으로 만나고, 그들의 영혼에 불을 붙이고자 노력해 왔으며, 미래의 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왔다.

아이들이 나처럼 칙칙하고 슬픈 청소년기를 보내지 않도록 말이다.

이제 혁신교실에서는 나의 교직 후배들이 이런 노력들을 하고 있다.

갈등과 불협화음을 거두고, 척박한 피폐한 영혼에 물을 주면서, 진정한 만남과 사랑을 일구기 위해 오늘도 애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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