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빛이 물들어 색색깔을 이루고 있다. 엷은 초록, 진초록, 아주 연한 초록, 연두빛 꽃무늬, 노르스름한 빛깔 무늬, 연한 하늘색과 어우러져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의 조화를 이루는 계절이다.
오월의 풋풋함을 가슴에 묻어 두고 시작된 유월이다. 시원한 시골의 풍경에 푹 빠져 며칠 밤을 뜨고 자고, 뜨고 자고, 일어나면 새 소리 꽃 소리, 바람 소리, 날이 갈수록 내가 이토록 자연의 소리에 깊이 빠져 들 줄 모를 지경이다. 화성 작업실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 책 저 책을 뒤적거리다 잠들곤 했다. 자고 나면 정원에 풀 뽑고, 나무에 물주고, 꽃 가꾸고 하던 것들이 몇 년 세월이 지나니까 아름드리 숲 속 멋진 정원이 만들어 졌다. 온갖 꽃들이 다 피어 새들과 함께 방긋 방긋 웃고 있다. 이 아름다운 것들을 혼자 누리기에 너무 벅찬 느낌이다. 자연은 신이 내린 축복 중에 가장 큰 선물 인 것 같다.
인간이 아무리 잘 만들어도 자연을 앞질러 갈 수는 없다. 오랜 시간을 비를 내리지 않는다든지 기후가 견디지 못 할 지경이 되면 다 소용없는 일이다. 바람만 조금 세게 때려도 정원의 나무는 옆으로 기우뚱해진다. 자연 앞에서 겸허해지고 고개를 수그린다. 작업실 이층 창문을 열면 너른 들판이 한 눈에 들어오고, 아침 햇살이 본능적으로 품에 안겨 쏟아져 온다.
인간의 모든 꿈과 희망은 따스한 대지의 속삭임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지나친 인간의 욕심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만 꿈과 이상은 희망을 갖게 한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지만 인간이 훼손하지 않는 한 자연만이 그대로 존재한다. 인간의 삶은 슬프고도 허망하고 부질없다는 생각에 가끔 사로잡힐 때가 있다.
삶은 그냥 스쳐지나가는 일순간의 요동일 뿐이다. 지각 변동도 지구의 자전축이 잠시 흔들리고 그러다가 흘러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오고, 바람 불어 또 다시 흔들린다. 표류 할 수 없는 물줄기를 휘감아 도는 듯 단절된 상상의 탈착증을 느낀다. 너무 고요한 나머지 쏟아져 오는 현기증을 걷잡을 수 없다.
인간이 제 아무리 너그러워도 인간일 뿐이다. 대 자연의 커다란 침묵을 지탱해 주는 시간의 또 다른 허무를 벗어나 엄습해 오는 꿈을 꾸며 매일 외면 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흘러 가 버린 물줄기를 잡을 수 없어 아쉽다. 인생이란 매 순간 스쳐 갈 뿐이다. 역류 할 수 없는 물과 같은 것이다.
어제의 꿈은 오늘의 바람이고, 오늘의 꿈은 내일의 공기이다. 사뭇 지나칠 정도의 집중력으로 대 자연의 가쁜 숨소리를 낱낱이 청취하고 함께 뼈아픈 고독에 절규한다. 꽃잎이 떨어지듯이 처마 밑에 새가 둥지를 틀어 하루 왠 종일 짹짹거린다. 매일 고귀한 생명의 용틀임을 듣는다.
언제나 높은 이상과 꿈 때문에 좌절하고 다시 일어서는 반복을 한다. 예술에 대한 절대 절명의 숭고함이 순백의 오롯한 희망으로 다시 삶을 꿈꾸게 하는 간절한 아침이다. /이순옥 시인
▲ 한국미협회원, 한국문협회원 ▲ 수원 예총감사, 수원미술협회 여성분과장 ▲ 경기대학교 외래교수 ▲ <불의 영가>, <나를 찾아서> 시집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