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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할아버지 최고!

 

30여년 전, 장가를 가서 마누라 닮은 딸을 낳았는데 다시금 30년 세월이 지나 딸을 닮은 손녀를 얻었다. 외아들만 둔 사돈의 입장에서 보면 사내아이를 내심 바랐을 테니 아쉬움은 크리라 여겨지지만 사람의 탄생이란 어쩔 수 없는 노릇이 아닌가.

지금 돌이켜 보면 이 아이는 세상에 태어나지 못할 뻔 했다. 사돈내외와 우리내외 그리고 딸과 사위가 매년 연례행사처럼 종합 진단을 받았는데 나와 딸아이 증상이 같이 나왔다.

좁쌀 알갱이만한 크기의 종양이 목에 있다는 것이었다. 갑상선, 바로 그것이었다. 당시에는 너무 작아 3개월 정도 지나 다시 한번 검사를 받아보란다. 그 후 3개월이 지나 딸아이는 재검을 했단다. 별 대수롭지 않겠거니 하고 지나쳤다.

어느 날 집사람의그 큰 눈에 눈물이 가득했다. 웬일이냐 물었더니 울먹이며 겨우 말을 건넨다. 딸아이 혼전부터 집사람이 보험을 들어주었는데 시집가고 나서도 계속 보험을 부었다. 그런데 보험회사에서 연락이 왔단다. 보험금을 타갔는데 왜 보험금을 계속 불입하느냐고? 얼마 전 딸아이가 와서 제 도장을 가져간 일이 생각났다. 아마도 딸아이는 우리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기 위해 우리 몰래 보험금을 수령했나보다. 연유인즉, 그 작은 종양이 갑상선 암으로 판정이 나와 보험회사에서 보험금을 딸에게 지급했던 것이다.

갑상선 암이야 요즘 의술로 수술만 하면 거의 100% 완치된다니 그리 걱정거리는 아니지만 문제는 딸아이가 임신 2개월이 돼 수술을 할 수 없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우리 집안은 이른바 가톨릭을 종교로 하는지라 낙태는 생각할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종양은 점점 커지고 있으니 말이다. 수술을 하자니 태아에게 영향을 미쳐 생명을 잃을 수 있으니 문제이고, 그냥 방치하자니 딸아이의 생명을 낙관할 수 없지 않은가. 시간은 촉박하게 흐른다. 어느덧 임신 5개월이 됐는데, 아직도 위험하니 한달을 미루잔다. 한달을 양가의 근심 끝에 지낸 후 병원을 찾았으나 다시금 한달을 기다리라 한다. 시가와 친정 두 집 식구들은 물론이거니와 당사자인 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심정으로 지내다보니 무척이나 수척해졌다. 보름에 한번 꼴로 집을 찾는 딸아이와 사위에게 무슨 말로 위로를 해줄지 갑갑하기만 했다. 병원에서는 의료사고를 염려해서인지 시일만 차일피일 미루고... 그해 추석이 되자 사위와 딸이 집에 왔는데 딸아이는 애써 웃음을 헤프게 웃는다.

차라리 웃지나 말지, 딸아이 속을 훤히 알고 있는 우리부부의 마음이 편해질리 없지 않은가.

나는 당시 성당 총회장이었기에 많은 교우들이 기도를 해주겠노라며 위로의 말을 건넨다. 시간은 흘러 11월 20일 한 생명이 태어났다. 주위의 많은 사람들을 걱정 속으로 몰아넣은 장본인이다. 신생아의 몸무게는 자그마치 3.9㎏. 말갛게 웃음 띤 얼굴로 평온하게 누어있는 손녀.

그 이듬해 그러니까 아이를 낳고 4개월이 지나 딸아이의 암 수술이 진행됐다. 얼마나 조바심으로 가득하던 세월이었을까. 천행으로 암은 전위가 되지 않았단다. 임신 순간의 크기 그대로였단다. 작은 기적이 일어났다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때 수술을 하였더라면 지금의 손녀도 없었을지 모른다. 태아를 살리자던 것이 오히려 태아가 어미를 살리지 않았을까. /임상호 시인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서정문인협회 이사

▲ 경기도 문학상 수상 ▲ 구름산 예술제 심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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