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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추억, 아름다운 노년 위한 선물

 

지난해 연말 ‘세시봉 친구들’이 방송에 출연하자 세대를 막론하고 열광했다. 가히 ‘세시봉 신드롬’이다. 내친 김에 전국투어에 나선 이들의 콘서트는 잇달아 매진사례를 보이고 있다. 뿐만아니라 ‘줌마 세대’를 위한 영화 ‘써니’는 지난 5월 개봉이후 두 달이 넘었어도 여전히 흥행을 멈추지 않고 있다.

 

뮤지컬 ‘광화문 연가’와 ‘젊음의 행진’도 인기몰이다. 스포츠도 예외는 아니다. 1970년대 고교야구 최대 라이벌인 경남고와 군산상고가 그라운드에서 다시 만난다. 22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야간경기로 진행되는 일명 ‘레전드 리매치’가 그것이다. 이처럼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향수를 자극하는 ‘추억 마케팅’이 대유행이다. 과거는 흘러갔지만 그래도 사람 사는 맛이 남달랐던 지난 시절이다. 마법 같은 이야기다.

 

하버드대 심리학자 앨렌 랭거 교수는 75세 이상 된 노인들을 일주일 동안 시골에 머물게 하면서 생각이 노화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다. 노인들이 사는 시골마을을 철저하게 20년 전 환경으로 바꾸고, 20년 전 생활을 하게 했다. TV와 신문, 옷차림 등 모든 환경을 노인들이 스스로를 50대라고 착각하도록 만들었다. 놀랍게도 은둔생활이 끝난 후 노인들의 생물학적 나이는 실험에 들어가기 전 측정했을 때보다 7~10년 가량 젊어졌다. 손가락의 길이도 길어졌다. 이것은 노인들의 환경과 생활이 바뀌자 그들의 세포가 착각을 일으켰음을 증명한 예다.

지난해 9월, 영국의 BBC-TV는 랭거 교수의 자문을 받아 비슷한 실험을 했다.

이제는 꼬부랑 노인이 된 왕년의 인기 연예인들을 한 곳에 모아놓고 옛날처럼 행동하고 생각하고 말하게 했다. 그들이 사용하는 소품들도 모두 예날 것들이었다. 일주일간의 실험이 끝난 뒤 시청자들은 아연실색 했다. 뇌졸중으로 쓰러져 휠체어를 타고 실험에 참가했던 팔순의 여배우는 휠체어를 버리고 혼자서 걸어 나왔다. 거동이 힘들었던 왕년의 남자가수는 무대로 나와 탭댄스를 췄다. 지팡이에 의존해야 했던 옛 뉴스앵커는 지팡이 없이 무대계단을 걸어서 올라왔다. 이 실험은 ‘더 영 원스(The Young Ones)’라는 제목으로 BBC 전파를 탔다.

외가 쪽으로 어머니 올케 되는 분이 있다. 올해 우리나이 일흔 아홉인 이 아주머니가 지난 봄 계단을 내려오다가 발을 헛디뎌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그 후 겉보기엔 멀쩡한데도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연세에 비해 ‘너무나’ 정정했던 터라 모두들 의아해 했다. 이곳저곳 병원을 찾아다니며 검사를 해봐도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도 좀처럼 차도가 없자 급기야 시집간 큰딸이 친정에 와 간병에 나섰다. 좋다는 갖은 영양주사는 물론이고, 보약을 해드려도 여전히 효과는 없었다. 아주머니는 소위 ‘아홉수’에 걸린 거였다. 일흔 아홉이란 적지 않은 나이에 넘어져 된통 혼나면서 아홉수를 생각해 낸 것이다.

 

‘이러다 재수 없으면 죽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니 별별 생각이 다 떠올랐다. 아주머니 친정 쪽 가계(家系)를 훑어보니 아홉수에 걸려 죽은 사람도 보였다. 이런 부정적인 생각들만 자꾸만 떠오르니 마음이 불안해 지고, 몸도 따라주질 않는다. 그러니 백약(百藥)이 별무 소용이다. 아주머니 이야길 전해 듣고 당장 필요한 것은 정신과적인 치료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가는 병원마다 영양제 처방만 할 뿐 정신과로 가보라는 얘기는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주머니는 예전으로 돌아와 있었다. 이번엔 제대로 된 의사를 만났나 보다. 들은 바로는 그 의사가 ‘검사결과 너무 깨끗하고, 백 살은 문제없다’고 장담했다는 것이다. 그 말에 그동안 쌓였던 아주머니의 마음 속 불안은 순간 모두 사라져 버렸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작은 일에도 쉽게 노여워하고, 불안해한다. ‘늙으면 죽어야지’는 공인된 거짓말이다. 오히려 삶에 대한 애착은 늙어갈수록 더 강해지기 마련이다. 모처럼의 휴가철이다. 거창한 휴가지가 아니라도 좋다. 찬찬히 훑어보면 아직도 주위엔 옛날의 정취가 남아 있는 곳이 꽤 있다. 잠시 잊었던 풍경 속에서 지낸다는 것 만으로도 노년은 행복하다. 그렇다면 아름다운 노년을 위해 추억을 선물해 보는 것은 어떨까. 회춘(回春)은 물론 덤이다.

/이해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