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소설은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에 소설이라는 형식의 옷을 입힌 것입니다. 이번에 낸 소설들은 동화, 우화, 설화, 역사소설 등 전통적인 이야기 형식을 차용해 썼기 때문에 `성인동화'의 성격이 강합니다."
최근 문화재 창작소설 '아수라의 눈물'(창조문화 刊)과 '시간 위에 지은 집'(창조문화 刊)을 발표한 성낙주(49.서울 노원중학교 교사)씨는 두 권의 소설에 석굴암의 아난존자, 첨성대, 부석사, 고려상감청자백학문매병, 성덕대왕신종, 불국사의 석가탑과 다보탑, 분황사,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서산마애삼존불, 황룡사 9층탑 등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담았다.
"이번 작업은 우리 문화재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재창조하고 현재화하는 노력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찬란한 문화유산을 물려받았는데도 재창조하고 현재화하는 작업에 소홀했고 이 부분에 대해 우리 선조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습니다. 이번 작업은 문화재를 소설화했다는 점에서 문화유산에 대한 새로운 변주(變奏)라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이번 소설들은 전반부는 창작소설, 후반부는 미술사에 대한 평론 등 이질적인 두 분야를 한데 묶은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기존학계의 통념과 통설을 반박하는 문화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담은 후반부다.
"첨성대는 천문대가 아닙니다. 천문대라면 지속적으로 천체를 관측할 수 있는 자리와 쉽게 올라갈 수 있는 계단, 안전장치 등이 갖춰져 있어야 합니다. 또한 9m의 높이는 사람들에게 고소공포증을 느끼게 하는 높이죠. 천문대라면 국가의 공식기관으로 정사인 '삼국사기'에 그 기록이 실려 있어야 마땅한데 야사인 '삼국유사'에 건립 사실만 간단하게 올라 있습니다. 천문대의 구성요소들을 갖춘 조선시대의 관천대(觀天臺)나 인도의 미수라 얀트리와는 많이 다릅니다."
그의 해석에 따르면 첨성대는 선덕여왕의 성체(成體)를 형상화한 우물 모양의 상징물이다. 고대에는 생명의 원천, 여성성의 상징 등의 의미로 우물을 숭배의 대상으로 여겨왔고 선덕여왕은 자신의 위상과 왕권강화를 위해 우물 모양의 첨성대를 세웠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 소설들은 문화재 소설 쓰기의 첫걸음에 불과하다"며 "앞으로 고려대장경, 한글, 화엄사, 정림사지 5층탑 등 우리의 문화유산을 소재로 소설화 작업을 계속 진행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