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파주시 광탄면 용미4리 혜음원(惠陰院) 터는 사찰과 숙박시설을 겸한 고려 행궁(行宮)이며, 발굴조사 결과 현재까지 드러난 규모는 대지 4천 평(100x80m)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2001년 이래 이 곳을 연차발굴 중인 단국대 매장문화재연구소(소장 박경식. 사학과 교수)는 올해 제3차 조사까지 벌인 결과 대지 4천 평에 각종 건물 25기가 들어섰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11일 말했다.
특히 올해 발굴에서는 화재로 폐기된 건물지 배수로 유적에서 12세기 강진과 부안에서 집중 제작된 것으로 생각되는 각종 고려청자가 다량으로 출토돼 이 시대 도자사 연구에 획기적인 자료를 확보하게 됐다.
조사결과 혜음원지(址)는 건물과 담장 등의 구조와 배치로 보아 동쪽과 서쪽의 2개 구역으로 확연히 구분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중 건물 규모나 출토 유물로 보아 한 쪽은 왕이 행차해 머물곤 하던 별원(別院=행궁) 혹은 별궁(別宮)이며 반대편 구역은 역참(驛站) 시설 정도로 생각되고 있다고 박경식 소장이 말했다.
「삼국사기」 편찬책임자인 김부식이 남긴 글에는 혜음원에는 별궁 외에 사찰도 포함돼있는 것으로 적혀있으나 아직까지 뚜렷한 사찰 흔적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건물터 25기는 청자와 기와를 비롯한 출토유물로 보아 대부분이 혜음원이 처음 들어서기 시작한 12세기 고려시대 것들로 파악되고 있다.
또 건물 대지는 5-6개 단을 이뤄 건물터는 높낮이가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건물 성격과 관련해 올해 조사에서 확인된 건물지 2곳과 관련 유적 및 출토 유물도 주목을 끌고 있다.
이 중 한 건물지에서는 앞마당을 전돌(보도블럭)로 깔았으며, 다른 건물지 앞마당은 고급 석재로 꼽히는 청석(靑石)을 배치한 것으로 드러났다.
고려청자는 접시류가 주종을 이루는 가운데 수요층이 한정된 잔탁, 벼루, 매병이 포함돼 있다. 접시 중에서는 육각형.팔각형도 섞여 있다.
박경식 소장은 "조선시대 흔적이 확인은 되지만 극히 한정돼 있는 반면 12세기 고려시대 건물과 유물이 압도적"이라고 하면서 "이로 보아 혜음원지는 12세기 무렵에 왕이 머무는 '특급호텔'로 번영을 누리다가 무신난을 고비로 그 기능이 급격하게 축소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