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28 (토)

  • 맑음동두천 12.3℃
  • 흐림강릉 6.7℃
  • 맑음서울 12.4℃
  • 맑음대전 11.6℃
  • 흐림대구 8.1℃
  • 흐림울산 7.4℃
  • 흐림광주 12.4℃
  • 흐림부산 8.3℃
  • 맑음고창 7.5℃
  • 구름많음제주 11.8℃
  • 맑음강화 7.4℃
  • 맑음보은 9.5℃
  • 맑음금산 11.3℃
  • 맑음강진군 9.1℃
  • 흐림경주시 7.6℃
  • 흐림거제 8.8℃
기상청 제공

시베리아호랑이 촬영 박수용씨

"호랑이는 매우 섬세하고 영리합니다"
잠복지서 3개월간 목숨 걸고 기다려

"제 손에 호랑이 수염이 스치고 지나갔을 때는 정말 시간이 멈춘 듯했습니다."
시베리아 야생 호랑이의 생태를 담은 2부작 다큐멘터리 `밀림이야기'(14ㆍ15일 오후 10시 방송 예정)를 제작한 EBS 박수용 PD는 2년여 제작 기간에 호랑이의 습격을 당했던 가장 아찔했던 순간을 이렇게 회상했다.
"호랑이가 눈치 못 채게 위장한 잠복지에 혼자 들어가서 30cm 크기의 카메라 구멍으로 호랑이를 보고 있었죠. 한번은 어미 호랑이가 카메라를 노려보면서 똑바로 걸어오더군요. 좀 수상한 냄새를 맡았는지 호랑이가 카메라 렌즈를 퍽 치면서 잠복지 지붕에 올라탔어요. 지붕은 무너져 내리고 저는 몸을 안쪽으로 숨겼죠. 속으로 `휴' 하면서 숨을 고르는데 호랑이가 눈치를 못 채고 제 손에 수염이 `쓱' 하고 닿으며 지나가더군요. 그 순간이란 겪지 않고는 아무도 모를 겁니다."
이 프로그램은 1997년 `시베리아, 잃어버린 한국의 야생동물을 찾아서'를 제작한 박수용 PD 팀이 2001년부터 두 해 겨울을 꼬박 시베리아에서 보내며 멸종 위기에 처한 호랑이를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촬영한 것이다.
2001년 10월 러시아 연해주 패트로바 섬에 야전복 차림의 박수용, 이효종 PD와 장진, 순동기 AD 등 4명의 EBS 자연다큐 제작진이 도착했다.
오자마자 이들이 한 일은 호랑이 발자국이나 배설물을 확인해 호랑이가 다니는 100여㎞에 거쳐 10여 개의 잠복지를 만드는 것.
한 평도 채 안되는 땅속 잠복지에서 이들은 몇달 동안 기약없이 호랑이를 기다리며 자신과의 싸움을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잠복지를 만들어 카메라를 설치한 뒤 각 잠복지에 한 명씩 들어가 3개월 동안 한번도 밖에 나가지 않았다. 자주 드나들면 호랑이가 가까이 오지 않기 때문이었다.
"영하 30도가 넘는 추위 속에서 3개월 동안 허리도 못 펴고 눕거나 앉아 있어야 하기 때문에 다들 동상에 관절염은 기본입니다. 너무 추워서 팔다리를 움직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요."
장진 AD는 "잠복 초기에는 나가면 죽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이 되니까 죽도록 기다렸는데 호랑이한테 발각되면 못 찍는다는 게 더 두려워졌죠"라고 말했다. 박수용 PD도 생명의 위협을 느낀 그 순간 혹시 공포탄을 쏴서 예민한 호랑이들을 다시는 못 찍게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고 털어놓았다.
"우리는 호랑이가 용맹스럽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잖아요. 그런데 알고보면 호랑이는 정말 섬세하고 예민하고 머리가 좋습니다.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지나가는 사람이면 못 본 척 슬쩍 피해 있을 줄도 알고 5㎝ 정도 크기의 몰래 카메라도 알아볼 정도로 똑똑하거든요."
그가 호랑이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이 점 때문이다.
"원래 호랑이에 관심이 있었다기보다 촬영 기술과 능력을 키우려고 한번 도전해 봤죠. 호랑이 촬영을 할 수 있으면 다른 것도 다 할 수 있겠다 싶었거든요. 그런데 정말 어렵더군요. 제가 찍어 온 물총새, 뱀 등 다른 동물들은 프로 내내 그 동물만 나오는데 호랑이 다큐멘터리는 사람이 많이 나와요. 찍기가 그만큼 어렵거든요."
1997년 시베리아에 300마리 이상 있었던 호랑이는 6년이 지난 현재 150마리로 줄었고 그마저 밀렵과 먹이 사슬의 파괴 등으로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출 위기에 처해 있다.
"햇수로 3년 동안 제 눈으로 목격한 호랑이만 3대에 걸쳐 세 마리가 죽었죠. 한마리는 총에 맞아, 또 한 마리는 덫에 걸려, 다른 한마리는 서로 싸우다 물려 죽었거든요. 야생호랑이의 마지막을 기록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기록했지만 꺼져 가는 불씨를 살리기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박PD는 다큐멘터리 전문 PD로서 반딧불이, 물총새, 파충류, 솔부엉이 등을 담은 많은 자연 다큐멘터리로 PD연합회, 방송위원회 작품상, 백상예술대상 등을 휩쓴 바 있다.
1997년작 `시베리아…'는 방송 사상 최초로 북한에서 조선중앙TV를 통해 ``러시아 원동지방에 사는 조선범'이란 제목으로도 방영돼 화제가 됐다.
항상 현지에 나가 촬영하기 때문에 가족들과 떨어져 있다 보니 5살 난 둘째 딸은 아빠가 오랜만에 집에 돌아가면 부끄러워 엄마 뒤로 숨는단다.
"일에 매달려 정말 소중한 것을 잃고 사는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가족들에게 신경을 못 써 주는 게 참 미안하고요."
최근 촬영을 마치고 귀국한 그는 당분간은 나빠진 건강도 추스르며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생각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지금까지 몇년 동안 닦아온 호랑이 생태에 대한 노하우를 살려 "북한에 들어가 백두산 호랑이의 생태를 담은 다큐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