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채널 '다시읽는 역사,호외(號外)' 시리즈는 14일 밤 12시 박정희 군사정권의 한국 영화 통제 이야기를 내보낸다.
박정희 군사정권은 5.16 쿠데타에 성공해 집권한 이듬해인 1962년 영화법을 제정한다.
영화법 제정, 그것은 한국 영화계를 암흑기로 이끄는 전주곡이었다.
겉으로는 한국 영화의 보호와 육성을 내세웠지만 이면에는 영화를 국책 홍보도구로 여겼던 박정희 정권의 인식이 고스란히 담겼다.
박정희 정권은 한국 영화를 통제하기 위해 외화수입권을 부상으로 내건 우수영화보상제와 검열이라는 당근과 채찍을 이용했다.
당시 화천공사 제작담당이었던 황기성 감독은 "외화수입권만 따려고 만들어서 창고에 집어넣는 경우도 있고, 점수만 따고 뭐…, 그때 정책에 아부하는…, 뭐 그건 영화도 아니지"라고 회고했다.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꺾은 검열제도도 1960∼70년대에 걸쳐 한국 영화를 암흑의 긴 터널에 몰아넣은 주범이었다.
용공이라고 삭제되고, 선정성이 있다고 삭제되고, 가난을 사실적으로 그렸다고 삭제되고 등등.
검열은 한국 영화 제작편수를 떨어뜨리고 내용도 신파조의 멜로드라마나 '영자의 전성시대' 같은 호스티스물 등으로 가벼워졌다.
이장호 감독은 "슬픈 일이죠. 채플린 영화 '모던 타임스' 보면 채플린은 컨베이어 벨트에서 나사만 조이지 않습니까. 뭐 제가 그런 영화를 만든 것은 나사 조이는 일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과 똑같죠"라고 말했다.
유신시대 이후 영화는 유신이념을 홍보하는 제1의 도구가 됐다.
박정희 군사정권은 모두 세 편의 국책영화를 제작했는데 당시 일반 영화보다 네 배나 많은 제작비를 들였다.
윤삼육 시나리오 작가는 "새마을 영화 '아내들의 행진' 촬영세트장에 당시 문화공보부장관이 따라와서 이거 놔라 저거 놔라 감 놔라 대추 놔라 하더니 임권택감독이 기념으로 '레디고'를 부르라고 하니까 '아 싫어' 하고 도망갔어요"라며 그때 일을 떠올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