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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오토바이에 사랑 싣고 행복 배달하는 집배원

 

조선후기 실학을 체계화하는데 기여한 서계 박세당과 신이 허락한 산악인 엄홍길의 전시관이 있는, 책 읽는 도시 의정부에서 집배원과 함께 생활한 지도 7개월 남짓 흘러가고 있다.

지난 추석 산더미처럼 쌓인 우편물을 배달하느라 근무복이 다 젖을 정도로 땀을 흘린 집배원들, 내일의 많은 배달물량을 걱정하여 자기 체력관리를 위해 소주 한잔할 여유조차 없이 특별소통기간이 지나갔다. 무거운 헬멧과 소포 때문에 생긴 디스크 관절염 같은 직업병에 시달려도 내가 결근하면 동료들의 고생이 걱정돼 제대로 쉬지도 못한다는 어느 집배원의 얘기가 안타까움으로 가슴을 적신다.

집배원은 그 지역의 배달에 있어서는 전문가를 넘어 달인이 돼야 한다. 순로구분에서부터 배달구역, 배달속도, 그 지역의 문화, 생활습관 심지어 지역민의 성향까지도 파악해 그에 걸맞는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다양한 연령층에 맞는 친근하고 정중한 어투는 물론이고 옷매무새, 물건의 전달 방법 등 고객들의 니즈에 맞춰 제공해야할 서비스는 하나의 틀로 정의되기 어려울 정도이다. 상대하는 고객층이 이렇게 다양하다보니 집배원은 대한민국 최고의 서비스를 추구한다는 항공사 스튜어디스보다도 더 고객을 먼저 생각하는 CS의 달인이 돼야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에게 있어 집배원은 친절하고 평화로운 존재이다. ‘좋은 직업’이기 전에 따뜻한 ‘행복전도사’로서의 역할이 더 크게 인식돼 왔던 것이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은 집배환경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최근 정보통신의 발달로 집배원이 배달해야 할 우편물은 정감어린 편지가 아닌 각종 고지서와 홍보우편물, 부피가 큰 인터넷 쇼핑몰상품, 농산물 등의 택배우편물이 주를 이루고 있다. 아날로그 시대에는 집배원만큼 반갑고 소중한 사람이 없었다. 한통의 편지가 써지는 시간도 온 밤을 하얗게 새우고 몇 장의 종이가 습작으로 나뒹굴어 진 뒤에야 완성이 됐고, 편지를 받은 사람의 손에 오기까지도 몇 일의 시간이 허락돼야 가능한 시절이 있었다. 디지털 시대는 모든 걸 송두리째 바꿔 버렸다. 통신의 방법은 이미 각종 휴대기기와 인터넷 매체에게 자리를 내준지 오래고, 상대적으로 늘어난 실물상품의 거래에서는 기다림은 이미 참을 수 없는 가려움증만큼이나 사람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 고객들은 평상시 보다 조금만 늦어져도 전화로 독촉하는 경우가 많아 집배원들은 마음의 여유가 없다.

더 많은 주민들과 정다운 대화를 나누고 주역주민과 생활정보를 주고받고 연결해 주는 사랑의 메신저로서의 역할이 희석돼 가는 것 같아 안타까워진다.

따스한 가을햇살에 시내 쇼핑을 위해 드라이브를 하다보면 도로 갈림길이나 건물 입구마다 청색바탕에 하얀 글자의 표지판이 빛나고 있다. 바로 7.29일 시행한 도로명 주소이다. 도로명 주소 시행은 130여년의 우정역사에 가장 큰 전환점이 되고 있다. 일본의 식민지하에서 조세수탈을 목적으로 지번주소를 사용했기 때문에 도로명 주소 사용은 일제 잔재를 청산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도로명 주소에 익숙해지면 우편물 구분과 배달시간도 획기적으로 단축될 것이다. 선진국인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OECD)은 물론 아시아의 중국, 태국 ,필리핀 등 많은 나라에서 도로명 주소를 이미 사용하고 있다. 도로명주소로의 변환은 우편서비스를 제공하는 집배원들에게 있어는 일대 혁명과도 같은 일이다. 주소개편의 대 변혁 속에서도 고객들에게 단 한통의 우편물도 오배달 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밤을 새워 시스템을 구축하고 달라진 배달 구역도와 도로명주소를 암기하는데 열을 쏟는다. 산을 만나면 길을 트고 바다를 만나면 다리를 놓는 봉산개도 우수가교(逢山開道 遇水架橋)하는 집배원들의 진취적인 자세에 찬사를 보낸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집배원의 모습과 역할도 많은 변모를 거듭하고 있다. 과거의 고수보다는 현재에 발맞춰 이 시대에 걸맞는 우정문화를 창출해 나가고 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은 고객을 가족같이 여기고, 한통의 우편물도 소홀히 할 수 없어 급류 속에서도 우편물을 지켜내려 했던 어느 집배원의 마지막 몸짓과 같은 숭고한 정신일 것이다.

/김윤수 의정부우체국 운용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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