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필자가 살고 있는 아파트 게시판에 시·군 통합을 주장하는 전단지가 붙어 있다. 살펴보니, 시·군 통합이 되면 학군이 재조정돼 교육환경이 좋아질 것이고, 아파트 값도 올라갈 것이고, 행정비용이 절감돼 예산이 절약되며, 중앙정부의 지원이 확대되는 등의 주장들이 적혀 있다. 벌써 일부 지역에서는 주민간 찬반이 나눠 논쟁이 한창이라고 한다. 2년 전 광풍처럼 지역을 휩쓸고 지나갔던 시·군 통합의 바람이 다시 불어올 모양이다.
대통령소속 지방행정체제개편추진위원회는 2011년 12월까지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회 또는 주민 2% 이상이 통합을 건의하면 추진위원회에서 2012년 6월까지 통합안을 만들고, 그 이후 통합 권고 및 통합 의사 확인을 거쳐 2014년 제6대 지방선거에서는 통합 단체장과 지방의원을 뽑겠다는 로드맵을 발표했다.
지방자치단체 구역개편 논의는 1980년대부터 정치권과 학계에서 간헐적으로 제기됐다. 1994년에는 내무부 주도로, 2001년에는 당시 여당인 민주당의 주도로, 2005년에는 여야 합의에 의한 정치권의 주도로, 2009년에는 이명박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로 추진됐다. 2009년 당시 행정안전부는 통합을 유도하기 위해 통합지자체에는 향후 10년 간 1~4천억원의 재정지원을 약속했고, 전국 18개 지역의 46개 시·군이 통합건의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이들 중 마산·창원·진해 1곳만 통합 창원시가 됐다.
개편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행정구역과 생활권의 불일치, 자치계층간 행정기능 중복으로 인한 비효율, 도(道) 경계로 나눠진 뿌리 깊은 지역감정 등을 그 이유로 들고 있다. 반면 개편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자치구역의 광역화와 단층화는 오히려 행정효율을 저하시켜 지금까지 쌓아올린 지방자치의 기틀을 송두리째 무너뜨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지자체 규모를 더 키워 주민과 행정의 거리를 멀게하는 것은 참여민주주의 관점에서 볼 때 개혁이 아닌 ‘개악(改惡)’이라는 다수 학자들의 우려도 있다.
필자는 그 간의 논의과정을 보면서 우선 지방행정체제 개편의 철학부터 다시 세워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지역간, 주민간 갈등을 유발하면서 정해진 일정에 따라 무리하게 진행하기 보다는 이제라도 개편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에 대한 진지한 검토와 성찰이 필요하다고 본다.
행정체제는 중앙과 지방을 떼어 놓을 수 없다. 지방행정의 체계와 단위를 통합한다고 해도 지금 같은 중앙정부의 과도한 권한 독점과 업무중복을 해결하지 않으면 행정의 비효율을 극복하기는 힘들다.
중앙과 지방행정 모두 주민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기는 마찬가지인데, 지방행정만 개혁한다는 편협한 접근방식으로는 국민을 위한 총체적인 행정개혁을 이루기는 어렵다.
행정이 타 분야에 비해 지체된 것이 사실이고, 따라서 행정의 선진화는 이 시대의 중요한 과제이다. 그런 만큼 행정개혁은 시대의 철학을 반영하고, 국민이 동의하는 절차와 수순을 밟아야 성공할 수 있다.
/최경신 경기도의원 (미·군포1·행자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