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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겨울애상

 

코끝이 찡하고 귓불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옷깃을 여며도 살 속으로 파고드는 바람을 막을 수가 없다. 골목을 뛰쳐나온 바람은 낡아 허름해진 현수막을 찢고는 가로수로 올라가 나뭇가지를 흔들다.

이맘때쯤 되면 몸도 마음도 분주하다. 한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준비하는 마음보다는 송년회 모임이 달랑 한 장 남은 달력에 빼곡히 적혀있다. 학교 동창모임, 산악회, 협회, 친목회, 가족 모임 등 어찌 그리 모임의 형태도 이유도 색깔도 많은지 일주일에 서너 번은 약속이 잡힌다. 줄일 수도 없고 불참할 수도 없는 모임들이다.

천태만상의 모습들 속에서 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본다.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에 마음을 다치고 서운함을 느낀다. 결국에 혼자 삭이고 말 것이면서도 한동안 가슴앓이를 하게 된다. 그것은 가까운 사람한테 일수록 더 많이 느끼는 것 같다.

12월이 되면 유독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정말이지 아무것도 아닌 일에 강산이 변하는 세월 쌓은 정을 한꺼번에 허물었다. 누구의 잘못이랄 것도, 책임이랄 것도 없는 어처구니없는 일에 사람 관계를 놓쳐버렸다. 단 한 번도 그 사람과 안 보고 살게 될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헤어질 거라는 생각은 더더욱 해본 적이 없다. 동료로서 벗으로서 많은 시간을 함께 했으며 주고받은 말들이며, 삶의 사사로운 것들까지 함께 나눈 좋은 사람이었지만 모든 것을 깨는 건 찰라였다.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함께 했던 생각들이며 가끔은 삶의 지침이 돼주기도 했고 해맑게 웃는 모습에서 아이 같은 천진함을 찾게 했던 친구다. 삶의 이해타산보다는 진실이 뭔가를 먼저 확인하려 하고 상대를 먼저 배려했던 사람이지만 오해는 한 순간이고 믿은 만큼 그 골은 깊고 아팠다. 헤어짐에 익숙하지 않는 나는 오랜 시간 아파야 했고 순간순간 무엇이 문제였는가를 떠올리곤 했지만 먼저 화해를 청한다거나 그 오해 아닌 오해를 풀려하지는 않았다. 길을 가다 문득 마주치게 되면 무슨 말을 해야 하나. 혹여 그에게 어려운 일이 생기면 모르는 척을 해야 하나, 내가 그럴 수 있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에 늘 붙잡히곤 한다.

바람처럼 들려오는 안부에 귀를 세우는 것은 애증인가 그리움인가. 노래방에서 함께 불렀던 노래를 혼자 부르기도 하고 가끔은 술잔에 비친 그의 모습에 깜짝 놀라기도 한다. 날씨가 추워진 때문일까. 술자리가 많아진 까닭일까 요즘 들어 그 친구가 자꾸 눈에 밟힌다. 유난히도 겨울을 싫어했던 사람이다. 그리우면 그리운 데로 생각나면 그냥 가슴에 담아두자 하면서도 가끔은 화가 난다. 부화가 치민다. 사람살이 별 것도 아닌 것을 그냥 한 번 웃어넘기면 그만인 것을 웬 아집인가 하면서도 그게 맘대로 되지 않는다.

이렇게 또 한해가 간다. 화려한 네온사인과 종종걸음을 옮기는 사람들 그리고 성탄을 알리는 케롤송으로 활기가 넘친다. 언젠가 그와 함께 했던 식당으로 들어서면서 나는 오늘도 그에게 붙잡힐 것이다. 이런 내가 싫지만은 않다. 누군가를 추억하고 그리워하고 때론 미움 아닌 미움에 고통 받는 것 또한 살아있다는 증거일 테니까. 12월의 끝자락이 그리움으로 출렁인다.

/시인 한인숙

▲한국문인협회 회원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2006년) ▲안견문학상 대상(시) ▲시집 <푸른 상처들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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