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업체에서 여러 가지 명목으로 의약품 리베이트를 받아온 의사 1천600여명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당국은 지난 7월부터 2차 의약품 리베이트 단속을 벌여 의사 5명 등 25명을 기소했다. 또 리베이트를 받은 사실이 드러난 의사와 약사는 각기 1천644명, 393명에 이른다.
정부합동 의약품 리베이트 전담수사반이 25일 밝힌 의약계 리베이트 수수 행태를 보면 기가 막힐 정도다. 모 제약회사 영업본부장은 3년간 의사 519명과 약사 325명에게 10억4천만원의 리베이트를 건넸다. 다른 제약회사 두 곳은 1∼2쪽짜리 설문조사를 하면서 의사 1천여명에게 16억원을 안겼다. 또 특정 병원 창립기념품 구입비로 앞다퉈 억대 지원금을 건넨 제약회사들도 있었다고 한다.
정부가 의약계의 고질적인 리베이트 관행을 척결하겠다며 전담수사반을 만들어 전방위 단속을 착수한 것이 지난 4월초다. 작년 11월 리베이트 수수 행위자를 동시 처벌하는 쌍벌제 시행에도 리베이트 행태가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담수사반의 이번 단속에서 적발된 의·약사가 2천명을 웃돈 것을 보면 의약계가 정부의 리베이트 척결 의지를 비웃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다.
보건의약계는 며칠 전 리베이트 등 잘못된 거래 관행을 바로잡겠다는 자정선언을 했다. 의료기기 거래나 의약품 처방과 관련한 부당, 불공정한 금품 수수를 하지 않겠으며 이에 책임을 지겠다고도 했다. 자정선언에는 대한병원협회 등 13개 보건의약단체가 참여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보건의약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크다는 의사협회는 빠졌다. 따라서 자정선언에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는 시각이 대두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것은 자정선언 불참에 대한 의사협회의 해명이다. 의약품 리베이트는 시장경제 체제의 한 거래 형태이며, 자정선언 자체가 의미 없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보건의약계의 자정선언에 특정 단체가 불참한 것 자체를 놓고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의약품 리베이트가 결국 국민의 의료비 부담 증가로 이어지고, 의약산업 연구개발 투자 위축을 가져온다는 점 등을 생각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국민 다수가 의약품 리베이트 관행에 부정적이고, 정부가 리베이트 척결 의지를 다지는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 최고의 지성인 집단으로 꼽히는 의사협회가 이런 점을 두루 살펴 자정선언 동참을 긍정적으로 검토해주길 바란다. 한편 행정·사법 당국은 의약품 리베이트 수수 행위에 대한 처벌 수위를 대폭 높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