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이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우러나오는 따뜻한 온정은 한파를 녹이고도 남음이있다. 해마다 연말이면 익명의 기부자들이 나타나 어둠 속의 세상을 환히 밝혀왔다. 이른바 ‘얼굴 없는 천사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구세군 자선냄비에 성금을 넣거나 자선단체에 뜨거운 사랑을 쾌척함으로써 세인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곤 했다. 자선냄비의 경우 올해 목표액인 45억원을 무난히 넘어 50억원에 가까울 것이라고 한다. 각박해진 세태라고들 하지만 이들의 선행은 세상이 아직은 메마르지 않았으며 공감과 나눔과 연대로써 얼마든지 삶의 희망을 키워갈 수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올해의 구세군 자선냄비는 여느 때보다 뜨겁게 들끓었다. 특히 지난 4일 거리모금 사상 역대 최고금액인 1억1천만원짜리 수표가 자선냄비에서 나와 세상을 놀라게 하더니 20일에는 90대 노부부가 구세군본영을 찾아 1억원짜리 수표 2장을 기부했다. 물론 모두 익명이었다. 90대 노부부는 후원금을 맡기며 “아무도 모르게 해달라. 진짜로 오늘밤은 다리를 쭉 펴고 마음 편하게 잘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해 삶의 참의미와 참행복이 무엇인가를 일깨워줬다.
해마다 연말의 인정을 더욱 흐뭇하게 해왔던 전주 노송동의 ‘얼굴 없는 천사’는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와 5천24만2천100원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다. 2000년 이후 12년째다. 이밖에 임종을 앞둔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전 재산을 기부하겠다고 밝혔는가 하면 한 80대 할머니는 3천 시간의 자원봉사도 모자라 쌀과 현금을 쾌척하기도 했다. 아름다운 기부 릴레이가 전국 곳곳에서 줄기차게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아무 조건 없이 사랑을 나눠주는 마음은 분명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자기자신을 흔쾌히 내놓는다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아서다. 하지만 이들 천사의 선행을 바라보며 박수만 치고 만다면 그 의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셈이다. 촛불은 방을 잠시 환하게 밝힐 순 있으나 내내 따뜻하게 덥히기에는 아무래도 역부족이지 않은가. 국민들의 의식전환과 정부의 제도보완이 뒤따랐을 때 그 효과는 배가한다는 뜻이다. 우리 사회는 근래 들어 날로 커지는 빈부격차 등으로 고통받고 있다.
행복한 이웃이 줄어드는 대신 불행한 이웃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다. 연말 기부천사들의 선행을 이런 시대상에 대한 경종이자 등불이라고 여기고 정부와 부자들의 현명한 지혜와 담대한 용기를 기대한다. 결국 분배와 복지와 상생과 공영에 관한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