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느 누군가가 ‘너의 의무를 다하고 그리고 나머지는 신께 맡겨라’라고 했다. 사람의 삶과 죽음의 중심에 있는 나에게는 다시 한 번 가슴에 깊이 새기 된 글귀이다.
지난 5월 9일 늦은 밤 다시 출동 벨이 울렸다. 출동장소는 금정119안전센터 뒤 아파트로 환자상태는 노인성 전신쇠약이라고 무전이 나왔다.
보호자의 안내를 받아 방안으로 들어가서 보니, 마른체구의 노인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힘없이 침대에 누워 있었다. 즉시 환자 곁으로 가서 생체징후를 체크했다.
혈압을 체크하기 위해 환자의 손을 잡는 순간 차갑고 축축한 싸늘함이 나의 뇌신경까지 전달됐다. 보호자들이 단순하게 생각하는 노인성 전신쇠약 증세가 아니었다. 환자에 대한 최대한 많은 정보를 보호자에게서 끌어내어야 한다라는 생각에 이것저것 질문들을 하면서 우선 들것에 옮겼다.
환자는 식도암 환자로 체력저하로 인해 방사선 치료를 중단하고 있었다는 말이 내 귓가에 전해졌다. 환자는 암 환자였다. 그것도 중중 암환자. 구급차에 옮겨진 후에도 환자의 의식은 점점 떨어지고 있었으며, 호흡과 맥박이 빨라지고 있었다.
기본 생체징후가 정상 범위를 벗어나 흔들리고 있었다. 이대로 간다면 심정지가 올 수 있는 급박한 상황이었다. 우리는 보호자에게 환자의 위급한 상황을 설명하고 인근 병원으로 이송하려는 찰라 환자의 병력을 이유로 ‘국림암센터’로 이송을 원했다. 환자가 매우 위독한 상황이었기에 1~2시간이나 소요되는 병원으로 가기까지는 무모한 모험이었다. 하지만 인근병원에서는 외면당하는 암 환자의 가족들의 간절한 눈빛을 외면할 수 없었다. 1분 1초도 지체할 수 없었다.
고속도로에 진입했으나 환자의 상태는 호전을 보이지 않았다. 각종 모니터링 및 산소투여, 5분 간격의 생체징후 체크를 실시했지만 의식이 떨어지는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처음부터 하나하나씩 다시 체크하고 정보를 조합하고 ‘내가 빠뜨린 것은 없나?’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순간 머릿속에 스쳐지나가는 건 ‘축축한 피부, 맥박과 호흡이 빨라진다면 혹시 저혈당쇼크는 아닐까?’ 즉시 혈당측정기 키트를 열어 환자의 채혈을 받았다. 화면에 띄워진 숫자 ‘34㎜Hg/dl’ 예상이 맞았다. 너무 낮은 수치로 하마터면 심정지가 올 수 있는 매우 낮은 수치였다.
앞으로 1시간이나 더 가야 병원에 도착한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믿을 수 있는 건 나 자신밖에 없었다. 손가락의 모든 감각을 이용해 혈관을 찾아 주사바늘을 밀어넣었다. 순간 주사바늘 안으로 빨간색 혈액이 밀려나왔다. 성공이었다. 100cc 포도당이 모두 들어갈 무렵 환자의 어깨를 두드렸다. 깊은 잠에서 지금 막 깨어난 것 같이 부스스한 말투로 우리에게 말을 건넸다.
며칠 후 환자와 보호자는 금정119안전센터를 방문해 그 당시 상황을 회상하며, 고마움을 다시금 전했다. 담당주치의에 의하면 그 당시 119의 적절한 처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생명을 잃을 수 있었다고 한다.
아무리 사소한 것들이라도 그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간절할 수 있었음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했다. 작은 실수조차 허락지 않은 치열한 전쟁터와 같은 현장에서 차갑고 날카로운 두뇌와 영원히 식지 않은 뜨거운 심장을 가질 수 있는 능력을 지닐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간절히 바라본다.
/조선덕 군포소방서 금정119센터 소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