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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춘추] 기본적 가치와 관용정신이 깃든 다원화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때를 다원화의 시대라고 일컫는데 동의하고 있다. 다원화는 ‘여럿이 됨, 여럿이 되게 함’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갖고 있는 것처럼 다양한 사람들 그리고 각자가 속한 여러 집단들 간의 경쟁과 협력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다원주의는 기본적으로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해 주는데서 시작되기 때문에 특정 가치관에 기초한 의견이나 입장이 무조건적으로 수용될 수 없으며, 여러 의견들이 서로 경쟁하고 조정하면서 올바른 해결책을 찾아가는 것을 바람직하게 여긴다. 아울러 다양성을 최대한 증가시키는데 관심을 둔다. 즉, 다원주의자들은 다양한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무정부 상태로 빠지지 않으면서 조화롭게 생활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에 관심을 갖는다.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너와 내가 서로 만나 도움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도움을 받기도 하며 본의 아니게 손해를 끼치기도 하고 손해를 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인구가 증가하고 사회가 다원화됨에 따라 우리는 더욱 계산적이고 합리적이며, 개인주의적으로 변하고 있다.

옛 어른들은 ‘남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을 강조했고 자신을 심히 비방하고 능욕하는 사람에게도 예로써 대하라 했다. 이유 없이 나를 비난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그를 미워하기에 앞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이해하고 용서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한해를 마감하며 되돌아보면 우리사회의 다원화는 지나치게 편향됐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주어진 현실과 상황에 따라 각자의 주장하는 목소리가 구구각색임에도 나름대로 논리가 서있고 진실을 담은 듯이 보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냉철한 이성으로 앞서의 주장들을 돌아보면 일부분은 진실보다 허위, 정의보다 개인적인 이해관계, 다수의 복리증진보다 소수의 명예를 생각해 그랬던 경우가 있었음을 역사를 통해 알게된다. 역사를 돌아봐 과거를 알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또 다른 제도적 자기관리에 대한 가르침이 아닌가 싶다. 오늘이 지나면 이 또한 과거로 남겨지는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된다.

요즘 우리사회가 혼란스럽다. 정치, 경제를 비롯해 공직사회를 막론하고 사회의 전반적인 흐름이 지나치게 다원화로 인한 후유증을 앓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시장상황과 경제 정책은 정치적 이해득실의 다원화에 밀려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국가의 중차대한 정책조차 여야 정쟁의 다원화 주장에 따라 국회를 표류하는,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안개 정국 속에 지켜보는 국민으로서 그저 염려스러울 뿐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는 말이 있다. 공정한 법을 관장하는 공직자의 대통령에 대한 비판과 폄하된 내용이 우스갯 소리로 회자되고 대중의 인기를 얻기 위한 비판과 독선적인 자기주장에 의해 진실이 가려진 듯 한 이 현실 또한 어떻게 해석해야할 지 걱정스럽다.

우리가 염원하고 추구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임을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자유민주주의는 무엇보다도 다원성을 전제로 하는 정치철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자기만 옳고 자신이 속한 집단의 주장만이 선이라고 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어떤 경우에도 힘의 우위로 문제가 해결돼선 안된다. 그런 의미에서 불확실성 선택의 영역이 증대한 다원화된 오늘날의 사회에서 중용의 미덕은 실로 중요하다.

다양성의 조화를 위해 다원주의자들이 강조하는 것은 최소한 기본적 가치와 관용 정신이다. 기본적 가치가 다양성을 한 곳으로 모은다는 점에서 통합성과 관련된다면, 관용은 자신이 싫어하는 대상을 그대로 인정한다는 점에서 조화성과 관련된다. 다원화 시대의 당위성을 논하기 전 인간사회가 어떻게 화합하고 평화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는 서로를 인정하는 데서 비롯된다는 역지사지의 가르침을 되새겨 볼 때라 생각된다.

/강준의 용인대학교 경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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