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 집 근처 가까운 산을 올랐다. 쌉싸롬한 공기가 귓불에 와 닿은 느낌이 제법 신선했다. 며칠 전 내린 잔설로 군데군데 미끄러운 곳이 있어 엉덩방아를 찧는지 간간히 들려오는 비명이 주변을 긴장케 하기도 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가파른 언덕을 오르다 보니 어디선가 청량하면서도 둔탁한 소리가 겨울 산을 깨운다.
딱따구리가 소나무를 쪼아대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쪼았는지 나무의 껍질이 많이 벗겨져 있고 구멍도 뚫려있다. 딱따구리가 하는 짓을 한참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나무를 쪼아대는 솜씨가 목공이 망치질 하는 것과 비슷했다. 일정한 속도와 간격으로 딱딱 딱 딱딱딱, 한숨 돌리고 다시 딱딱 딱 딱딱딱 하면서 나이테 깊숙한 곳까지 파내고 있다.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선지 먹잇감을 찾아내기 위함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 놈의 집념과 노력은 대단했다. 비와 바람이 돌의 석공이듯 산의 목공은 딱따구리인 듯 싶다. 날카롭고 단단한 부리로 부지런히 쪼아대는 세상, 전문가가 되기 위해선 그만큼의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임진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 첫 일출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이 일출의 명소를 찾아 새해의 소망을 기원하고 새로운 다짐을 한다.
비록 작심삼일의 결과로 돌아올지라도 이날만큼은 가족과 자신, 주변 모두가 행복해지길 기원하고 평소의 생각을 새롭게 확인한다.
부쩍 어려워진 국가 경제만큼이나 집안의 살림살이도 버겁다. 시장가기가 겁이 난다. 몇 만원 들고 시장 나가봐야 별로 살게 없다. 몇 가지 주섬주섬 사다보면 주머니는 바닥나고 시장바구니는 헐렁하다. 대형마트와 홈 쇼핑몰 등에 밀린 소매점은 하루가 멀다 하고 간판을 바꿔달고 몇 집 건너 하나씩 생기는 음식점 또한 썰렁하기는 마찬가지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시장에 나가보면 활력이 넘치고 전대가 불룩해진 상인들도 꽤 있었다. 흥에 겨워 콧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장날이면 뻥튀기 아저씨며 난전 장사 등 흥행을 이루던 곳이 이젠 한산하기만 하다. 손님보다 상인이 많은 곳이 재래시장이 돼가고 있다.
국가의 큰살림이야 전문가가 알아서 하겠지만 각 가정에서도 전문가가 필요하다. 우리 모두가 전문가가 돼야 살 수 있는 세상이 요즘인 것 같다. 가장은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아내는 현모양처가 돼 세상의 지킴이가 돼야 한다.
원룸에 살면서도 좋은 차 타고 저축하기보단 여행 다니며 청춘을 즐기겠다는 젊은 층들이 많다. 마이너스 통장을 사용하면서도 명품에 고급음식점을 드나들고 아이를 낳기보다는 둘이서 잘 살면 그만이라 생각하고 부모와 가족을 돌보기보다는 내가 우선이라는 적당한 이기주의가 확산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일들이 세상의 흐름과 맞물려 일어나는 현상들이겠지만, 좀 더 책임있는 생각과 판단으로 우리 모두가 전문가가 됐으면 좋겠다.
딱따구리가 산의 목공이라면 우리는 세상을 이끌어가는 기둥이다. 기성세대들이 전문가가 돼 좀 더 살기 좋은 세상, 누구나 행복한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 새해 첫날 딱따구리를 보면서 올 한 해 전문가가 돼 보겠다는 각오를 하게 된다.
/시인 한인숙
▲한국문인협회 회원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2006년) ▲안견문학상 대상(시) ▲시집 <푸른 상처들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