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06 (월)

  • 맑음동두천 25.8℃
  • 구름조금강릉 27.3℃
  • 맑음서울 26.6℃
  • 구름많음대전 25.0℃
  • 흐림대구 22.6℃
  • 흐림울산 23.8℃
  • 구름많음광주 24.8℃
  • 흐림부산 27.2℃
  • 구름조금고창 25.2℃
  • 제주 24.5℃
  • 맑음강화 25.7℃
  • 구름많음보은 24.4℃
  • 구름많음금산 25.9℃
  • 구름많음강진군 26.3℃
  • 흐림경주시 22.1℃
  • 구름많음거제 25.3℃
기상청 제공

[칼럼] 우리는 따뜻한 사람이었는가?

 

‘사람들이 왜 저렇게 사는가?’

거리에서 먹고사는 사람들, 처음에 나는 그들이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사지가 멀쩡한 사람이 작은 그릇을 앞에 놓고 엎드려 동전을 구걸하는 모양이나, 눈먼 장님으로 가장하고 동냥그릇을 들이미는 사람들을 보면 동정심에 앞서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주위를 눈여겨보면 그러한 사람들은 여기저기에 널려 있다.

세상에는 부자보다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다. 내가 사는 지동의 재래시장 골목 초입에는 이런저런 형색의 가난한 사람들이 많다. 달랑 야채 한 바구니를 놓고 앉았거나 어물을 한 대야 정도 담아 파는 사람들도 있다. 게다가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파지를 줍는 노인들도 있다.

이들은 구걸하는 사람들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가진 것은 빈약하지만 자기의 힘으로 먹고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다. 한편으로는 존경스러운 마음마저 들 때가 있다. 벌이는 시원찮지만 매일 자기의 힘을 최대한 쏟아 붓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자주 그들에게서 야채도 사고 생선도 산다. ‘사내가 뭐 이런 걸 들고 다니냐’고 집에서 야단을 들을지언정. 그러나 동냥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어쩐지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의 동냥그릇에 동전 한 닢이라도 내놓기가 꺼려졌다. 그때는 왜 그랬을까? 나는 동냥을 하는 사람들과 유사한 노숙자들을 거의 매일 만나다시피 한다.

그들은 주로 아침 출근길에서 만날 수 있는데, 성곽을 돌고 팔달산을 넘으면 대략 한 시간 반가량 소요되는데 이때에 마주치는 이들이 노숙자들이다. 산책로 주변에서 아침부터 소주잔을 기울이며 큰 소리로 지껄여대는 그들을 보게 되는데 그리 기분이 좋지 않다. 그들의 일부는 산책객에게 손을 벌려 구걸해 그것으로 소주를 사서 마시는 것이었다. 산책객은 동전이나 지폐 한 장을 그들에게 주곤 했다.

그러한 모양들을 보면서 산 위로 오르면서 저들에게 건네준 동전이나 지폐가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못할 텐데 싶었다. 그러면서 ‘왜 저렇게 살아야 하는가’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러다 날마다 이들을 자주 목도하면서 ‘오죽했으면 저렇게 살까’ 하는 것으로 생각이 바뀌게 됐다. 더욱이 차가운 날씨에 홀쭉한 뱃가죽을 드러내 놓고 벤치에 처져 누워 있는 사람들을 보면 가슴이 아리기까지 했다. 우연히 사내 하나가 산을 오르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사내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봤다. 헝클어진 머리칼에 태어나서 세면이라는 것은 전혀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은 얼굴이었지만 지성미가 깃들어 있는 것이었다. 그는 손이 바람에 휩쓸리는 낙엽처럼 후들거리며 떨렸다.

“아침식사는 하셨소?” 입술까지 떠는 그가 측은해 보였다.

“아뇨. 그저 소주 한 병이면 됩니다. 부탁합니다.” 말씨도 예사롭지가 않았다. 나는 멍하니 서서 잠깐 생각에 젖었다.

“대학을 다닌 것 같구려. 맞지요?” 내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더 이상 묻지를 않았다. 그가 겪은 그 이후의 사연들이 구구절절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숙자들에 대한 이전의 내 편견에 대해 심한 부끄러움이 일어났다.

“요기나 하시오.” 한 장의 지폐가 그의 삶을 다시 꽃피우게 하는 꽃씨가 될 수 있을까? 나는 고액권 한 장을 그의 손에 쥐어줬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그것밖에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연탄재를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나는 그제야 안도현 시인의 시구를 떠올려보면서 절망의 늪에서 흐느적이는 이들도 한 때는 열기를 내뿜었으리라 깨닫게 됐다.

인간은 다면체이다. 똑같은 사람이더라도 그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단조롭게 봐서는 안 되겠다고 스스로 다짐해보면서 나는 경찰서로 향했다.

/박병두 작가·경찰학 박사

▲ 1964년 전남 해남 출생

▲ 한신대 문예창작과, 아주대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 원광대 박사

▲ 산문집 ‘길위에서 마주치다’ 시집 ‘낯선 곳에서의 하루’ 장편소설 ‘그림자 밟기’ 시나리오 ‘외로운 바람’ 시산책집 ‘착한 사람을 보면 눈물이 난다’

▲ 경기문학상, 이육사문학상, 고산문학상, 전태일 문학상, 경기예술대상 수상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