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시인 이연옥 |
젊은 시절엔 자식을 다 키워놓으면 걱정거리가 없을 줄 알았다. 아이들이 말썽을 부리거나 힘겨울 때, ‘어서 커라, 다 크면 걱정 없겠다’ 생각하며 살았다. 이제 아이들이 커서 결혼도 하고 또 제각각의 분야에서 일을 한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았던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겨난다.
며칠 전 둘째딸이 집 근처에 있는 지점으로 발령받아 편하게 출·퇴근하게 됐다고 새 직장을 맘에 들어 하는 걸 보면서 은근히 한시름 놓았다. 그런데 어제 저녁에 딸아이한테 전화가 왔다.
“엄마, 나 속상해. 어떻게 해요?” “왜 그래, 뭐 잘못됐니?” “그게 아니고, 윗분이 나를 미워하시나 봐. 먼저 있던 곳 지점장님이 함께 이곳으로 오셨는데, 업무 분담에서 나한테 너무 벅찬 업무들을 맡기셨어, 속상해”
“왜, 그분 착실하시고 인자하시잖아.” “그래도 나, 힘들어. 다른 직원들도 나한테 뭐 잘못한 거 있냐고 해요.” “그럼, 니가 정말 잘못한 거라두 있니?” “없는데, 이상해요.”
딸아이는 상냥하고 싹싹한 편인데, 전날 밤엔 울면서 직장을 그만 두고 싶다고 투정을 한다. 학교를 졸업하고 한 직장에 몸담았던 아이가 그런 일로 직장을 그만 두고 싶다는 말이 영 맘에 걸린다.
“일단 한번 참아보자, 네가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 하다가 정 힘들 때 일을 줄여달라고 해봐라”하며 달래보기도 했다. 여러 말로 달래긴 했지만 은근히 걱정도 되고, 왜 우리 애한테 그리 하시나, 속이 상해 잠이 오질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니 어젯밤 일이 생각이 나서 아침부터 맘이 안 좋다. 식사도 드는 둥 마는 둥 끝내고 집안을 정리하는데, 주말이라 출근하지 않은 딸아이가 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온다.
“엄마!” “응 그래, 잘잤니?” “네, 그런데 있잖아. 나랑 꽃시장 갈래요?” “웬 꽃시장? 맘이 풀렸니?” “가면서 이야기 할께요.” 꽃시장을 가는 동안 속이야기를 한다.
“밤새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날 너무 믿으시는 거 같아. 일반 업무에다 추가로 맡은 업무가 VIP 담당이야.” “그래, 그래. 그런 일은 아무에게나 맡기는 게 아니지. 새 직원보다 내게 더 믿음을 가지신 거야. 그래서 중요한 일을 맡기신 거 같아.”
“그렇게 돌려서 생각하는 게 맘이 훨씬 편할 거 같아요.” “잘 생각했다, 잘했어.” 등을 토닥거리자 딸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정 힘들면 엄마 말씀대로 일을 조금만 덜어달라고 말씀 드릴거야. 더 열심히 잘해봐야지, 이쁘게”라고 한다.
우울한 기분을 꽃으로 달래려는 딸아이는 노랑 장미 두 다발과 장미에 어울리는 청보리이삭 두 다발을 사면서, “엄마, 이 노랑 장미꽃 예쁘게 꽂아 놓고 오늘 기분전환 할거야, 이쁘지?” 한다.
활짝 웃는 딸아이는 노랑장미와 청보리이삭과 노랑 프리지아를 사들고 집으로 향했다. 내방에 프리지아를 예쁘게 꽂아 주곤 바쁘다고 휑하니 가버린다. 제 맘을 스스로 다스리고 가는 딸아이가 대견하고 기특하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고 견디지 못할까봐 밤새 걱정했던 일이었는데 한 가지 걱정을 덜어줘 고맙기만 하다. 아무쪼록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해 모든 일을 총명하고 지혜롭게 헤쳐 나가는 훌륭한 직장인이 되길 빌어본다.
▲ 한국문인협회 시흥시지부장 ▲ 시집 <산풀향 내리면 이슬이 되고> <연밭에 이는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