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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안(73) 씨의 객관적 경력은 경찰관과 목사이다. 경찰관과 목사라는 어울리지 않는 직업을 경력에 올릴 정도로 이 씨의 인생은 굴곡져 있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군(軍) 헌병대를 거쳐 경찰에 입문했으며 퇴직후 목사안수를 받아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이 씨에 대한 국민의 기억은 그가 ‘고문 기술자’라는 것이다. ‘고문’과 ‘기술자’의 합성으로 파생한 신조어인 ‘고문 기술자’는 생경할 수밖에 없지만 1970~1980년대를 지내온 이들에게는 낯선 명칭이 아니다.

민주화와 학생운동의 중심에 있던 활동가들에게 ‘이근안’이라는 이름은 공포 그 자체였다. 국민의 뇌리에 깊숙이 박힌 이 씨의 이미지는 지난 연말 타계한 민주화의 대부 김근태 민주당 상임고문을 소위 칠성판에 묶어 전기고문 등 갖은 악행을 자행한 것이 알려져서다. 김 고문은 이 씨에 당한 고문 후유증으로 인해 정치생활중 말이 어눌해 연설에 애를 먹었고 급기야 파킨스병을 앓다가 사망에 이르렀다.

또 이 씨로부터 수많은 인사들이 고문을 당했다는 증언이 이어졌다. 심지어 이 씨에게 고문을 당하던 여성은 모진 고문 중에 때아닌 생리가 터지자 이 씨가 속옷과 생리대를 사다 준 기억을 되살리며 인간성이 망실된 잔인한 인생에 몸서리치기도 했다.

이 씨는 민주화 이후 수배를 받다가 자수해 7년형의 선고를 받아 수형생활을 했다. 김근태 고문은 생존시 여주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이 씨를 면회했고, 수감중 기독교에 귀의한 이 씨의 사과를 받았지만 “이 씨의 사과가 진심이었을까 하는 생각에 괴로웠다”고 말했다.

이 장면에서 영화 ‘밀양’이 떠오른다. 자신의 아들을 살해한 범인을 용서하기 위해 면회온 주인공에게, 범인은 아주 온화한 표정으로 ‘하나님께 용서를 받았다’며 인간적 용서를 우습게 만들었다. 영화는 주인공이 기독교 절대자의 용서와 인간적 용서와의 괴리를 고민하다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것으로 결말이 나 영화가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뇌리에 남았던 장면이다.

이 씨가 출소 후 목사가 됐다. 관계자들에게 따르면 목사가 된 이 씨는 각종 간증집회와 설교에 불려다니는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특히 이 씨는 집회에서 자신의 고문 등이 애국이라고 미화해 공분을 사기도 했다.

그런 이 씨가 소속 교단으로부터 목사직을 면직 당했다. 이 씨의 경우 절대자의 한없는 용서와 달리 인간적 참회는 역사와 피해자 앞에 절실히 요구된다.

/김진호 편집이사·인천편집경영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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