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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강을 거슬러 오르다

 

물 주름이 잔잔해 흔들림이 없는 듯, 늘 그 자리를 지키는 여유로움이 좋아 나는 종종 강을 찾는다. 언제 봐도 늘 그랬던 것처럼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유유히 흐르는 강. 강은 물을 안고 거부함이 없이 어떤 경우에도 쉬지 않고 낮은 데로 낮은 데로 낮춰 흐를 줄 알기에 그 강을 닮고 싶었다.

가까운 한강을 거슬러 북으로 북으로 파주 문산읍에 이르니 임진강.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 길, 물은 흐르되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그 곳에 닿았다. 흐른다는 건 연결돼 있다는 것, 또는 소통이 되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사람의 마음 흐름도 강물과 같아 때로는 꽁꽁 얼어 소통이 불가능한가 하면 어느 틈엔가 봄 눈 녹듯 녹아 여러 사람을 푸근하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물론 자기 뜻과는 상관없이 외부적인 원인으로 마음흐름이 단절돼 엉뚱한 결과를 낳게 되는 경우도 있다.

분단의 아픔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임진강은 아직도 그 아픔의 중앙에 남아 휴전선이 강의 허리를 지나고, 일대에는 판문점·임진각·자유의 다리를 아물지 않은 창상(創傷)처럼 껴안고 있었다. 북에서 남으로 물새들 벗 삼아 묵묵히 흐르는 임진강에 가로 놓인 다리. 한국전쟁 포로들이 자유를 찾아 돌아왔기 때문에 이름을 ‘자유의 다리’라 부른다고 했는데, 이름이 무색하게 ‘뚝’ 끊어진 채 방문객들이 매달아 놓은 갖가지 소원 글귀만이 바람결에 펄럭이고 있었다. 형형색색으로 매달려 아우성치고 있는 그 소원들 중, 가슴 찡! 하게 울림을 주는 글귀하나가 있었다.

‘아버지, 저는 아버지가 원망스럽네유. 어머니는 여태껏 기다렸는데......’

한이 서린 기다림은 때로 사람의 마음을 꽁꽁 얼어붙게 해 마음흐름을 완전히 단절시키기도 한다.

지난해 추석 때 이산가족 찾기 행사에 참석하기로 했던 참, 눈물 많이도 펑펑 쏟아놓았던 그 언니 생각나 가슴이 멍멍해졌다. 한국전쟁 이후 어떤 연유인지 북으로 가게 된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평생을 홀어머니 모시고 살아왔었는데, 마침 이산가족 찾기 대상에 선정됐다고 그렇게 좋아하던 언니. 어머니와 옛이야기하며 아버지 만날 준비에 들떠 있었는데, 추석 이틀 전 연락을 받았다.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아버지가 아니라 아버지의 아들, 아버지가 북한에서 낳은 이복동생이란다. 이미 아버지는 돌아가셨다는 것이었다. 끝내 어머니가 거절하셔서 가족 만나기를 포기해야 했던 언니의 아픔은 그곳 자유의 다리에서 또 다른 이의 서러움과 더불어 펄럭이고 있었다.

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흐르고 그 강이 누구의 것이 됐든 누가 이름표를 붙였든, 길을 끊어도 흘렀고 철망으로 막아도 한 번의 흔들림이 없이 그저 흐르고 있을 뿐이다. 꽁꽁 얼어붙은 강에도 얼음 아래에는 막힘이 없이 흐르는 강물이 있다.

아무리 두껍게 언 얼음도 언젠가 녹아질 걸 이미 알고 있다는 듯, 결코 멈추지 않고 말없이 흐를 뿐. 강은 물을 안고 주저함이 없이 낮은 데로 낮은 데로 흐를 줄을 안다.

60년이 넘도록 얼어붙었던 마음흐름도 녹아내릴 수 있다는 듯 묵묵히 흐르는 그 강을 나는 닮고 싶다.

/이상남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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