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에 몸담고 있는 후배을 만났다. 학생들이 무서워 학생들을 피하게 된다는 것이다. 순간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언론에서 접한 학교상황이 현실임을 알았다.
교육자는 미성숙한 아이들에게 미래에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유와 권리를 바르게 실천할 수 있는 능력과 품성을 길러줘야 한다. 성숙한 인격체로서 거듭나게 해줘야 할 책무가 교사에게는 있다. 미숙한 존재인 학생을 상품화하거나 경영으로 받아들이는 상황들이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어 안타까운 일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학생 입장에서 조금도 불편함 없이 배려만 요구하는 우리들의 어른들도 도가 넘는 상황이 이뤄져 소통이 막혀버린 것이 현실이다. 학생을 지도하는 방법과 수단을 잃어버린 교사들이 교단에서 방황하고 학생들이 잘못해도 못 본 척한다는 방관자가 돼버렸다.
영화의 한 장면도 아닌 희귀한 일들이 교육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루고 성공적인 올림픽과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우리가, 가난한 나라에서 원조를 받다 원조를 주게 된 우리가 비인간화 자화상의 모습들이 교육의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할까? 이제는 감정적인 사념을 떠나 정확한 진단으로 우리사회를 바로 보고 인간화 교육으로 진입시키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나의 후배처럼 아이들이 무서워 피한다는 말은 학생들에게 상대적으로 가까이 현장에 있는 교사가 폭력과 예방에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이런 상황은 참으로 슬픈 현장이다. 선생님을 두려워해서는 안되지만 최소한 무서워해야 한다.
그래야 질서도 따르고 교육의 기본가치도 이룰 수 있다. 학생들이 오늘날처럼 무절제·무소통이 이뤄지는 것은 대학이라는 목표하나 밖에 없는 지나친 학문에 대한 지향성에 있는지도 모른다.
프랑스 교육에는 체육 과목은 반드시 프랑스어로 가르치고 수학과 비중이 고르게 같아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고 한다. 역시 독일 고3에게도 영어는 선택이고, 체육은 필수이며, 핀란드의 경우에는 아예 체육 수업을 학생의 기본권으로 주고 있는 것이다. 가까운 일본만 해도 고3까지 주4회 체육수업이 의무로 돼 있다. 지·덕·체라는 전인교육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대입체력장이 없어지면서 체육 수업은 자습시간으로 바뀌고 특정학기나 특정과목을 몰아쳐 이수해도 되게 하거나 1학년 때 체육 수업을 모두 이수하게 한 뒤 2·3학년은 학업에만 몰입시키는 현상들이 오늘의 교육과 질서를 문란케 하는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 어른들이 섬세하게 진단하고 살펴볼 일이다.
체육은 단결력, 절제력, 인내심, 자기희생의 용기와 깨끗이 승복하는 자세,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몸에 배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나약한 정신은 부모에게 의지형으로 바뀌고 무엇이든 부모의 공존하에 있게 되기 마련이다. 자율과 책임이란 현실은 멀어지고 의존형으로 심화돼 인간이 지닌 뇌의 형상을 줄이고 활발한 활동력까지 자제하게 만들고 있다.
학생들의 권리 주장만 강조할 뿐 책임은 방가하게 하는 문제가 있으며, 학교폭력으로 신음하는 학교 현장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게 일선 교사들의 하소연이다. 이에 경찰과 교사, 학생과 학부모의 역할과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에 놓여 있다. 기존 교육청 단위 파견경찰관이 있지만, 교육과 인문중심의 전문성을 지닌 경찰관을 조정관으로 둬 유연한 소통의 교두보 역할이 필요하다. 학생과 교사를 보호하고 친절하고 온화하며, 충분한 변론과 진술의 기회를 주고, 법률지식이 부족한 점을 찾아 도움주고, 인권을 존중하는 갈등연락 조정관을 이쯤해서 찾아보았으면 한다. 일선경찰 현장도 대면하기 가장 어려운 민원이 초·중·고 학생들이기 때문이다.
/박병두 작가·경찰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