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財閥)은 몇 가지 특징을 보인다. 우선 가족과 혈족 중심의 경영권 형성과 대물림을 통해 ‘한번 부자는 영원한 부자’라는 등식을 입증하려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 물의를 아랑곳하지 않으며 정부나 법의 심판마저 왜곡시키려 한다.
또 성장기에 정부의 특혜성 지원, 나아가 국민의 혈세를 이용한 부의 축적을 이루고 이 과정에서 권력과 유착돼 각종 비리를 양산한다. 우리나라 10대 재벌 중 대부분이 과거 권력과 유착해 총수나 그룹대표가 법적 처벌을 받은 것으로 보면 알 수 있다.
기업운영방식은 ‘황제경영’으로 불리며 왕조시대 군주처럼 재벌 총수의 말은 곧 법이고 조직원의 생사가 달려있다. 소위 문어발식 경영도 특징 중의 하나로 돈이 되는 사업이라면 두부, 순대, 빵, 떡볶이 등을 마다하지 않는다. 물론 우리 경제사를 돌아보면 압축성장 과정에서 빠른 결단과 순발력있는 경영으로 재벌이 경제발전에 기여한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수십년간 부를 세속하면서 폐쇄적이고 독단적이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 재벌에 대한 국민적 반감과 분노는 늘 상존해 왔다. ‘장군의 아들’로 유명한 김두한 전 국회의원은 지난 1966년 9월, S재벌의 사카린 밀수사건을 따지던 중 분노해 국회 본회의장에 인분을 뿌리는 초유의 사건을 일으켰다. 국민 대다수는 이 사건으로 대리만족을 느꼈으며, S재벌은 국민여론에 떠밀려 사카린 밀수에 악용된 한국비료를 국가에 헌납하지 않을 수 없었다.
‘88만원 세대’에게 재벌은 양면성으로 다가온다. 가난의 대물림을 끊어내기 위한 꿈의 직장을 의미하기도 한다. 반면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세상을 상징하는 대명사로 넘을 수 없는 장벽 앞에서 선듯한 무력감을 주기도 한다.
최근 동네상권을 점령하며 서민의 호주머니를 털고 영세업자의 생존을 위협하다고 비난을 받던 재벌의 빵집들이 시장에서 철수한다고 한다. 국내 대표적 3대 재벌의 철수선언에 이어 다른 재벌들 역시 유사업종에서 철수를 검토한다는 소식이다. 그러나 이 같은 결정도 대통령의 엄포나 공정거래위원회를 통한 압박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재벌들은 2세, 3세, 4세까지 기업을 승계하면서 “권력은 유한하지만 재벌은 무한하다”며 권력과도 각을 세운다. 또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역할과 비중을 내세우며 정부와 국민을 협박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시장경제를 무시하거나 기업의 의욕을 꺾는 재벌죽이기는 모두를 위해서도 금물이다. 하지만 그들이 창출한 부(富)를 그들만의 것으로 향유하려는 사대역행적 사고를 바꾸지 않으면 의외의 암초를 만나 좌초할 수 있음을 역사와 선진국에서 배워야 한다./김진호 편집이사·인천편집경영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