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은 멋진 이상과 멋진 일탈을 꿈꾸는 이중적인 존재다’. 경찰 입문 초기 학교폭력 업무를 담당해 오면서 청소년들과 많은 접촉 속에 내린 결론이다.
어린 적 나의 꿈은 큰 배를 운항하는 선장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스코틀랜드의 소설가 제임스 매슈 배리 경(Sir James Matthew Barrie)이 쓴 피터 팬 속에 나오는 후크 선장에게 반해 선장의 꿈을 갖게 됐던 것 같다. 어릴 적 꿈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차 바뀐다고 하는데, 나는 중학교에 입학해도 변하지 않았고 꿈을 빨리 이루고 싶은 마음에 가출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여러 가지 여건상 가출계획은 성사되지 못했지만 지금도 가끔 그때를 생각하면 왜 그리 철없는 생각을 했는 지 미소를 지을 때가 있다.
얼마 전 동창 모임에 나가 오십이 다 돼 가는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친구들도 모두 한두번 씩 가출을 꿈꿨다는 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삶이 단순하던 35년 전에도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한두 번쯤 가출을 꿈꿨는데 요즘같이 공부, 입시, 취직, 부모의 이혼, 학교폭력 등 많은 것들로부터 혹사를 당하고 있는 청소년들은 오죽할까? 1주일 내내 하루도 쉬지 못하고 새벽에 등교하고 저녁 12시가 다 돼 무거운 책 가방을 메고 파김치가 돼 돌아오는 고등학생 딸 아이를 보고 있노라면 학교로부터 탈출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나라에서는 매년 1만5천여 명의 청소년들이 가출을 한다. 그중 대부분 청소년들이 부모들의 설득으로 다시 귀가하지만 많은 청소년들은 집에 돌아 왔다가도 부딪치는 현실을 이겨내지 못하고 다시 가출하는 경우가 많다. 얼마 전 여성가족부에서 청소년 쉼터를 이용한 청소년을 대상으로 청소년들의 가출 실태를 조사했다.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청소년들의 첫 가출 평균 나이가 점점 어려지고 있었다. 남자는 13.3세, 여자는 13.8세였다. 가출 횟수는 남자가 9.5회, 여자는 5.9회였고, 가출 기간도 남자는 161일, 여자는 182일이나 됐다. 그리고 쉼터 청소년 57%가 귀가를 원치 않았다. 가출 원인을 보면 부모간의 갈등이나 부모의 폭행, 부모의 지나친 간섭 등 가족적 요인이 60%에 달했다.
그 만큼 청소년들의 가출은 가정의 소통 문제에서 비롯되고 있었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치열한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고 주문한다. 또 경쟁에서 이기려면 어려서부터 혹독한 자기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을 가르친다. 그러나 혹독함을 이겨내기 위해 고심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노력에는 별 관심이 없다.
나는 가끔 가출한 자녀 문제로 상담을 요청받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대부분이 외형적으론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이는 가정에서의 상담이 많다. 그러나 내면을 들여다보면 심각한 문제가 발견된다. 아이들이 어른들보다도 훨씬 현명한 판단력과 이해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명령과 지시가 아닌 설득과 이해를 구하면 어느 어른보다도 부모를 더 이해하고 인정한다. 너는 아직 어리니 엄마 아빠가 시키는 대로만 하라는 것이 자녀의 인격을 무시함과 동시에 자녀를 너무도 모르는 행동이다.
또 아이가 문제를 일으켰을 때는 엄마 아빠가 따로 따로 훈육하지 말고 훈육 수위와 훈육자를 합의한 다음 일관성 있는 훈육해야 한다. 자녀에 대한 훈육 방법은 아이의 장래를 결정한다. 엄마는 고래 고래 소리를 질러대는데 아빠는 “괜찮아, 그럴 수 있지”라고 한다든지, 아빠가 야단친 후 엄마가 다른 방으로 불러 또 야단을 친다면 아이는 혼란을 일으키고 자신의 잘못을 부모에게 전가하게 된다. 부모의 원칙 없는 무분별한 훈육이 의외로 아이들 가슴 속에 반항심을 키운다. 우리의 아이들은 부모와 어떻게 소통하느냐에 따라 멋진 꿈을 꾸기도 하고, 위험한 일탈을 생각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김선우 경찰청 대변인실 온라인소통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