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늘한 교실에서 여린 햇볕이 기웃거리는 창가에 모여들어 작은 돋보기로 빛을 모아 까만 종이에 연기가 나게 했던 장난이 기억하는가? 돋보기는 친구의 눈을 소 눈만큼, 하마(河馬) 입을 만들어 우리를 즐겁게 하였던 마법의 유리였다. 요즈음에는 돋보기가 없으면 시(詩) 한편 읽을 수도, 컴퓨터 영상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외출 시에도 다초점 렌즈의 도움을 받고 있으니, 놈의 마법 덕에 심봉사 꼴은 면하고 사는 셈이다.
한편 돋보기로 거울과 마주하면 흰머리는 물론 숭숭 뚫려있는 땀구멍, 주름이 볼을 가르고, 꺼뭇한 검버섯이 자리를 잡는 등 지저분한 것들이 적나라하게 들어난다. 더구나 돋보기는 깨끗했던 집안을 온통 먼지와 머리카락으로 더럽게 해 게으른 나를 괴롭게 만든다. 그렇다. 돋보기는 침소봉대(針小棒大)해 눈을 구원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보지 않아도 좋은 것까지 적나라하게 보이게 해 문제를 일으킨다.
신(神)은 인간의 생존을 위해 너무 작은 것도, 너무 큰 것도 보지 못하도록 했다. 인간은 이런 눈의 영토를 더 넓히기 위해 돋보기와 현미경, 망원경까지 만들었다. 만약 우리 눈이 아주 작은 것까지 볼 수 있다면 우리는 세균 속에 묻혀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세균 때문에 음식을 먹을 수도, 일상생활도 힘들다. 손에도, 옷에도, 침대에도, 화장실에도, 칫솔에도, 전철 손잡이에도 바글거리는 세균 덩어리가 보인다면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지고 말 것이다.
연인들이 키스할 때 눈을 감는 이유를 아는가? 시야를 가리며 나타난 커다란 얼굴의 파노라마를 보지 않는 것이 사랑 가꾸기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숨겨진 부분까지 속속 보게 됨은 영원한 사랑을 위해 결코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번 미술대축전에서 아름다운 여체의 누드 퍼포먼스가 있었다. 화가들은 모델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크로키 하고 있다. 아름다운 곡선 사이로 그녀의 치부가 드러났다. 얇게 가려진 실루엣의 아슬아슬한 신비감이 없어 실망을 금치 못했다. 세상에는 적나라하기보단 보이지 않고 숨겨져 있어야만 더 유익하거나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
‘긁어 부스럼 만든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사실들이 훨씬 더 많다. 보지 않아도 좋을 일을 굳이 돋보기로 들춰 문제를 만들 필요가 없지 않을까. 아무리 평화로운 사회라 해도 돋보기로 확대해 보면 곳곳에 분란의 불씨가 보일 것이다. 유명인들의 일거수일투족에도 돋보기를 사용해 미주알고주알 파헤쳐 논란거리를 만드는 것은 인권침해와 평화를 깨는 일이다. 밤이면 불야성을 이루는 룸싸롱, 고급 요정, 러브호텔 등 환락의 도시에 돋보기를 들여대면 우리 사회는 폭풍의 회오리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사회에도, 가정에도 좀은 보이지 않는, 어수룩한 여유로움이 있어야 평화가 지켜질 수 있다.
괴테는 ‘현미경이나 망원경은 순수한 인간의 감각을 혼란하게 한다’고 했다. 세상살이에서 너무 자세히도, 너무 멀리도 볼 필요가 없다는 뜻일 것이다. 나이 들면서 눈과 귀가 어두워지는 것도 너무 자세하게 보지도, 듣지도 말라는 신의 뜻이 아닐까?
/김용순 시인·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