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2년 월드컵에서 우리나라와 같은 조에 속해 친근한 그리스(Greece)의 국민들은 자긍심이 대단하다. 세계 문학의 원천인 그리스신화의 소유주이자 오늘날의 문명세계를 창조한 것은 그리스라는 자부심이 국민들 가슴속에 살아 숨쉬고 있다.
카잔스키의 대표작인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작가는 주인공의 입을 통해 “살아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 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모태(母胎)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였다”며 조르바를 묘사했다.
조르바를 그린 수사적 표현이 그리스인 스스로가 느끼는 자신들의 자화상임이 분명하다. 세계인들도 그리스가 민주주의의 뿌리이고 철학, 정치학, 수학의 발상지라는데 이견을 달지 않는다. 특히 그리스가 올림픽과 희·비극 등 현대에 와서도 지구촌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는 인류의 보물창고라는데도 의견이 모아진다.
선박왕 오나시스로 알려진 그리스 해운사업은 선박제조업의 패권이 동북아로 옮겨오기 전까지 그리스 주력사업이었고 기타 사업도 활발하지만 그리스하면 떠오르는 것은 아무래도 관광사업이다. 신들의 놀이터라는 파르테논 신전을 비롯 그리스 전역이 고대 유물이고 관광객의 발길이 머무는 곳이 어디나 유적지라는 말이 그리스의 관광자원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스를 찾는 연간 관광객이 그리스 인구의 2배에 가까운 2천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근대화의 과정에서 정치적 격변기를 거쳤으나 그리스인들은 문화적 자긍심과 탄탄한 경제력을 기반으로 유유자적한 생활을 해왔다.
그런 그리스가 지금은 세계 경제의 화약고로 불안한 시선을 모으고 있다. 유유자적한 외견과 달리 방만한 경제운용으로 골병이 든 그리스가 부도위기에 몰리면서 도미노 같은 연쇄작용으로 세계경제를 흔들거라는 위기감이 지구촌을 휩싸고 있는 것이다. 최근 20년간 그리스는 쓰는데 치중하느라 국고가 바닥나자 근근이 유럽이라는 지렛대를 활용해 버텨왔다. 그러나 빚으로 사는 살림에는 종착역이 있듯 작년부터 부도위기에 몰렸으며 우리가 겪은 소위 ‘IMF구제금융’ 때와 같은 강도 높은 허리띠 줄이기를 강요받고 있다.
다만 다른 점은 우리가 위기에 봉착해 국민적 공감대를 통해 금모으기에 나서는 등 자활을 위한 몸부림을 쳤다면 그리스는 ‘그리운 옛 생활’을 포기할 수 없다며 세계경제를 볼모로 파업에 나선 것이다. 그리스의 몽니가 걱정스러운 것은 그리스의 부도는 유럽경제의 위기로 파급되고, 유럽경제의 위기는 우리경제의 악재로 확산되는 지구촌경제의 매커니즘에 있다.
/김진호 편집이사·인천편집경영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