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영화를 좋아하는 올드팬들은 1967년 발표된 영화인 ‘졸업(The Graduate)’을 잊지 못한다. 미국의 연기파 배우로 스타 반열에 오른 ‘더스틴 호프먼’의 젊은 시절을 볼 수 있는 이 영화는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이의 자아(自我) 찾기가 주제다. 당대의 인기 듀오인 ‘사이먼 앤 가펑클’이 부른 더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The Sounds of Silence), 미세스 로빈슨(Mrs. Robinson) 등의 주옥같은 음악이 배경으로 깔린다.
주인공이 사랑하는 여자의 결혼식장에서 신부인 캐서린 로스를 손을 낚아채 세상으로 향하는 마지막 장면은 향후 많은 영화에서 패러디될 정도로 강인한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영화는 당시 미국사회가 안고 있는 반전(反戰) 논란과 황금만능주의, 계층간 위화감을 담았으며, 특히 대학졸업 이후 방향타 없이 헤매는 청춘의 고민이 고스란히 녹아 있어 젊은 층에 더욱 각광을 받았다.
요즘 우리사회도 본격적인 졸업시즌을 맞아 각급학교 앞에 교통체증이 발생하고 꽃가게가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그런데 졸업시즌을 맞아 정부와 우리사회가 졸업생들에게 갖는 표면적 관심은 졸업식장에서 난동방지에 쏠려있다. 졸업식장에서 벌어지는 계란투척, 캐첩 뿌리기, 밀가루 투척, 교복 찢기, 폭행 등이 사회문제로 기성세대의 걱정을 사고 있는 것이다. 물론 흉포화되는 졸업문화는 분명 순화되고 졸업의 참다운 의미를 되새겨야 할 것이다.
하지만 ‘88만원 세대’로 불리는 이들 졸업생들의 위기는 ‘희망 상실’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치명적 상처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고교와 대학 졸업생 가운데 일부만이 자신의 미래를 향한 구체적 계획을 갖고 사회로 향하고 있을 뿐 나머지 많은 수의 졸업생들은 백수 혹은 재수생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에 배출된다.
이들은 자칫 사회의 낙오자라는 낙인이 찍혀 영원한 소외계층으로 전락할 위험성이 높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로 위로하기에는 이들이 처한 현실이 너무 암담하고 불투명하다. 신자유주의적 시각을 가진 기업과 정치에 함몰된 정부가 이들을 외면하면서 졸업은 곧 사회에 버려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공정한 경쟁을 제공할 뿐 아니라 경쟁에서 탈락한 젊은이들에게 ‘패자 부활전’의 기회를 마련해 주는 것도 기성세대의 몫이다. 무엇보다 수사적 위로가 아닌 진정한 멘토로서, 또 사회공동체의 선배로서 내일의 희망을 열어주어야 한다. 이를 위한 사회적 비용은 낭비가 아니라 우리사회의 성장동력이 될 것이 분명하다.
/김진호 편집이사·인천편집경영본부장